“답은 시장에 있지 머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발한 창업 아이디어이더라도 그 아이디어가 열 번쯤 바뀌고서야 창업 성공의 길이 보일까 말까 할 겁니다.”
벤처 1세대로 국내 통신장비 1위 기업을 키워낸 남민우(54·사진)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장(다산네트웍스 회장)은 예비 청년 창업자들에게 아이디어보다 우선 시장에 뛰어드는 시작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고 강변한다. 최근 경기 성남 판교의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열린 기업가정신 강연에서 남 이사장은 “현장에 부딪쳐보는 실행력, 시장 변화와 대세에 순응하는 유연성이 청년 창업자들에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창업 전도사를 자청하는 그는 청년기 창업을 적극 권유한다. 경쟁력은 고생을 통해서만 얻어지고 평생 창업 시대에 젊은이들의 창업은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 그도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대우차 연구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6년 만에 안정된 직장생활을 접고 중소기업을 거쳐 지난 1991년 소프트웨어 수입상을 차렸다. 은행 빚 3,000만원을 밑천으로 사업을 키워 2년 후 다산네트웍스의 모태인 다산기연을 세웠다.
그는 “그 후 7년 동안 오직 ‘살아남자’만 외치며 보수적 경영을 했다”며 “IMF 외환위기 후 미국 실리콘밸리를 방문하면서 인터넷 산업의 호황을 목격한 것이 과거에 생존이 목표였던 경영관을 뒤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1999년 인터넷 연결장치인 라우터 생산에 본격 돌입하고 이듬해 코스닥에 입성했다. 국내 통신장비 1위라는 타이틀도 잠시, 2004년 주가 하락과 원청기업의 갑질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유럽 지멘스에 최대주주 자리를 내줬다. 언제나 조변석개하는 정보기술(IT) 시장의 변화 덕에 그의 손을 떠난 회사의 재인수 기회가 찾아왔고 2008년 8월 다시 경영을 맡았다. 그리고 3개월 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매출이 3분의1 토막 나는 상황에서 직원 유급휴직 등으로 버티며 구조조정 혹한기를 이겨냈다. 마침내 2010년 매출 2,000억원의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남 이사장은 “20여년 경영하는 동안 3~4년마다 어김없이 위기를 맞았다”며 “창업 후 네 번의 큰 고비를 겪고 나니 위기는 틀을 깨고 극복하면 성장의 길이 됨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기술력과 한우물 파기가 사는 길이라는 믿음에도 변화가 왔다. 유럽 기업들이 탐낸 인터넷접속다중화기(IP-DSLAM) 같은 독자기술이 기업 성장의 동력이었지만 이제는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찾아 이를 위해 사업 다각화도 필요하다는 점을 남 이사장은 받아들였다. 올 들어 미 나스닥 상장사인 존테크놀로지를 인수하고 럭셔리 스마트 기기 사업에도 진출했다. 그는 “사업가는 주어진 상황에 맞게 최적의 솔루션을 찾는 사람”이라며 “청년 창업자들도 처음의 신념과 아이디어를 바꾸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오히려 과거의 나를 버리고 시장의 요구대로 움직이는 합리성을 청년 사업가들이 갖춰야 한다는 생각이다.
창업 초창기 은행 빚을 갚기 위해 머리를 조아리며 물건을 팔던 때를 소개한 남 이사장은 “열정과 진정성만이 사람을 감동시킨다”며 “현실을 직시하고 정직이 최선의 정책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