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경제·금융일반

드림웍스 전 CEO 제프리 캐천버그의 미래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6년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DreamWorks Animation의 매각과 함께 거물 제작자 제프리 캐천버그 Jeffrey Katzenberg 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영화계의 가장 큰 변화 중 일부를 주도해온 그에겐 여전히 할 일이 남아 있다.




아침 식사 합시다 <BR>  LA 식당 존&비니스에서 ‘피자 아침’을 먹으며 인터뷰를 하고 있는 캐천버그. 투자업체 설립을 준비 중인 이 전직 영화제작업체 CEO는 이날 이 가게에서 잇달아 사업 미팅을 가졌다.아침 식사 합시다
LA 식당 존&비니스에서 ‘피자 아침’을 먹으며 인터뷰를 하고 있는 캐천버그. 투자업체 설립을 준비 중인 이 전직 영화제작업체 CEO는 이날 이 가게에서 잇달아 사업 미팅을 가졌다.


회사를 38억 달러에 미디어기업 컴캐스트 Comcast에 매각한 날, 제프리 캐천버그 Jeffrey Katzenberg는 평소처럼 조찬 모임을 잇달아 가지고 있었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전 CEO 겸 공동 창업자인 캐천버그-모기업 드림웍스 SKG의 ‘K’도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할리우드에서 아침 식사를 하루에 몇 번씩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날 그가 선택한 장소는 LA의 뜨는 동네 페어팩스 Fairfax에서 가장 트렌디한 피자집이었다. 별 특징 없는 녹색 네온사인, 사우나 같은 나무 패널 벽 등 장식이 튀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멋진 곳이었다(정통 유대교 교회당 바로 옆이라는 사실도 이 가게의 매력을 더해준다). 캐천버그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청색과 흰색이 섞인 줄무늬 셔츠와 검은 바지 차림이었는데, 그 장소에 잘 어울리는 복장이었다. 녹색 눈에는 테 없는 안경을 끼고 있었다. 6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간 할리우드 물을 먹으며 만들어진 깔끔한 이미지는 여전히 멋져 보였다. 그에게선 노인 우대를 받는 사람들의 괴팍한 성정이 아닌, 사회 초년생의 에너지와 추진력이 느껴졌다. 또 그는 직선적이고 효율적이었다. 기자가 질문을 던지던 중 잠시라도 말을 멈추면, 캐천버그는 1초도 안 되는 그 짧은 순간에도 수많은 일이 떠오르는 듯 딴 생각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캐천버그와 대화하다 보니 명랑함과 젊음의 생기가 문득문득 느껴졌다. 그는 킥킥 웃곤 했고, 미소가 거의 귀에 걸리기도 했다. 허풍쟁이 녹색 괴물(슈렉)과 엉덩방아 잘 찧는 과체중 판다(쿵푸 판다)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인물다웠다. 즐거움과 예측 불가능성을 향한 그의 열정도 그대로였다. 포춘과 만난 날, 캐천버그는 33세의 아들과 함께 버닝맨 축제(Burning Man festival) (*역주: 네바다 주에서 개최되는 가상 도시 형태의 자기표현적 축제) 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드림웍스가 컴캐스트에 인수되면서 일선에서 물러난 이 시기는 오랫동안 영화제작사 중역으로 일한 그가 네바다 주 사막에서 비전을 탐색하기에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드림웍스를 떠나면서 느낀 감회나 다음 목표에 대해 말할 때 그는 주저함이 없었다. 기자가 맞은편 의자에 앉자 캐천버그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문을 열었다(겨우 아침 9시 15분이었지만, 이 인터뷰는 그 날 캐천버그의 세 번째 일정이었다). 그는 “슬프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의 밝은 분위기는 회사를 넘기면서 약 4억 달러가 그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는 점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캐천버그가 바하마 제도에서 요트를 타며 여생을 보낼 생각이 없음은 명백했다. 그는 자신의 다음 계획인 투자회사 설립을 빨리 시작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각종 씨앗과 피칸이 들어간 시리얼과 다이어트 콜라를 앞에 두고, 캐천버그는 휴대전화를 받으면서 동시에 기자의 질문에도 답을 했다. 옆에는 그 날의 일정표 출력물이 깔끔하게 접혀 있었는데, 꽉 차 보였다.

쟁쟁한 친구들 사이에서도 지치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진 그의 명성에 걸맞는 모습이었다. 미디어 기업 IAC의 회장 배리 딜러 Barry Diller는 “캐천버그보다 더 에너지와 열정이 넘치고 주의 깊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고 단언했다. 딜러는 캐천버그가 1974년 패러마운트 영화사에 입사해 처음 영화계에 발을 디뎠을 당시 그의 상사였다. “머리 좋고 똑 부러지는 건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과거의 모습<BR>1994년 10월 캐천버그(왼쪽)와 스티븐 스필버그, 데이비드 게펀이 드림웍스 SKG의 설립을 발표하고 있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은 2004년 캐천버그를 CEO로 하는 독립적인 회사로 분사했다.과거의 모습
1994년 10월 캐천버그(왼쪽)와 스티븐 스필버그, 데이비드 게펀이 드림웍스 SKG의 설립을 발표하고 있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은 2004년 캐천버그를 CEO로 하는 독립적인 회사로 분사했다.


그와 함께 할리우드 최대 규모의 정치모금 행사를 여러 번 주최했던 배우 조지 클루니 George Clooney는 “한번은 캐천버그가 내게 전화를 하더니 ‘당신은 여기에 기부하게 될 것이고, 액수는 이 정도가 될 것’이라고 통보했다”고 말헸다. “아마 그에게서 전화가 오면 표정이 안 좋아지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뭔가를 시킬 게 뻔하니까.” 드림웍스 이사 출신으로 현재 휼렛 패커드 엔터프라이즈 Hewlett Packard Enterprise의 CEO를 맡고 있는 멕 휘트먼 Meg Whitman은 캐천버그와 동행한 스키 여행에 대해 이렇게 기억했다. “그는 스키를 탈 때도 일할 때와 똑같다. 스키장에 가면 캐천버그를 따라 산을 내려가고 리프트 타기를 거듭하게 된다. 굉장히 효율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그를 쫓아 산을 내려가길 반복하게 된다. 한 시간 반만 함께 있으면 하루에 탈 스키를 다 탈 수 있다. 나도 스키는 꽤 타는데 말이다.” 캐천버그의 오랜 친구이자 한때는 사업 파트너였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그를 단 한마디로 요약했다. “끈질기다.”

캐천버그는 자신에게 가장 큰 동기부여 요인은 승리하는 것이라고 인정했다. 도박을 좋아하는 그는 열다섯 살 때 카드놀이를 했다는 이유로 여름 캠프에서 쫓겨난 적이 있었다(당시 판돈은 M&M 초콜릿이었다. 그는 요즘도 포커를 치지만 판돈은 그 때보다 훨씬 커졌다). 하지만 그에게 드림웍스는 처음부터 ‘스트레이트 플러시’ *역주: 포커에서 2번째로 높은 패 가 아니었다. 드림웍스의 영화 제작 부문은 공동창립자인 캐천버그와 스필버그, 음악 및 영화 재벌 데이비드 게펀 David Geffen의 명성이 불러일으킨 세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2004년 분사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은 모기업보단 성공을 거뒀지만, 점점 거대 자본화되는 할리우드에서 안정된 미래가 보장될 만큼 큰 규모에 도달하진 못했다. 컴캐스트 인수가 발표되기 9일 전이었던 올해 4월 19일, 월가의 금융서비스 업체 코언 앤드 컴퍼니 Cowen & Co.는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예상 매출액을 낮추고 ‘시장수익률 하회(underperform)’ 평가를 유지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주 글렌데일 Glendale에 위치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은 캐천버그의 리더십을 따라 많은 작품을 창조했고 때로는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선견지명이 있었다. 드림웍스 SKG 산하 사업부였던 시절부터 총 22년간,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은 32개 작품을 제작해 전 세계 극장에서 135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드림웍스 사상 최고의 매출을 올린 작품인 ‘슈렉 2’는 9억 1,6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 과정에서 캐천버그는 회사가 할리우드의 지형을 바꾸는 파괴적 변화의 거침없는 물결을 받아들이도록 이끌었다. 드림웍스는 디즈니와 함께 애니메이션을 통해 장기적 매출을 올리는 프랜차이즈를 만들어낸 ‘유이’한 기업이었고, 일찌감치 미디어 스트리밍의 중요성과 할리우드를 재편할 수 있는 중국의 잠재력을 간파했다.

캐천버그는 유명 아이스하키 선수 웨인 그레츠키 Wayne Gretzky를 인용해 “퍽이 있는 곳이 아닌 퍽이 향하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드림웍스가 그와 함께 “스케이트를 탈 수 있을 만큼” 민첩했던 것이 자신에게 행운이었다고도 말했다. “작은 벤처기업이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장점이었다.”

인수합병을 통해 그 작았던 신생기업은 이젠 미국 통신서비스의 주요 공급자이자 케이블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인 컴캐스트 산하로 편입되었다. NBC유니버설을 통해 TV 네트워크·영화·테마파크 산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이 인수는 요즘 할리우드를 움직이는 근본적 원칙인 ‘커지지 않으면 죽는다’를 또 한 번 떠올리게 했다. 구멍가게 수준의 제작사에겐 미래가 없다. 거대 재벌의 일원이 되면 제작한 영화의 지적재산권을 전 계열사는 물론, 지구적인 차원에서 활ㄴ용할 수 있다.

캐천버그는 이런 미래를 예견하고 회사를 위해 최선의 방향을 선택했다. 이제 문제는 과연 그가 새로운 환경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이냐다. 그는 자신이 창업할 회사가 미디어와 기술의 융합에 집중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그건 아직 가설 수준의 설명이다. 현재 캐천버그는 영화업계에서 보낸 긴 세월 동안 얻은 교훈을 숙고할 시간을 얻은 상태다. 그는 효율적이지만 이야기꾼의 면모도 잃지 않았다. 좋은 이야기들이 종종 그렇듯, 이 이야기도 끝에서 시작한다.

4월 중순 어느 수요일 저녁, 캐천버그는 컴캐스트 CEO 브라이언 로버츠 Brian Roberts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컴캐스트는 중국의 한 사모펀드가 드림웍스 인수를 추진 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했고, 인수전에 참여하길 원했다. 그건 정확한 정보였다: 이 회사는 드림웍스의 주식을 전량 매수해 비상장화하고, 캐천버그가 계속 경영을 맡는다는 조건 하에 이사회와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은 이 회사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나, 일각에선 PAG 아시아 캐피털 PAG Asia Capital로 추측하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할리우드 최고의 거래 달인으로 알려진 캐천버그도 이 협상에선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는 드림웍스의 B종 주식(Class B) *(역주: 보통 창업자들이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보유하는 주식) 을 전량 보유하고 있었지만(전체 의결권의 60% 이상에 해당한다), 지배구조 특성상 인수 협상은 사외이사들이 주도했다. 캐천버그는 로버츠에게 드림웍스의 이사회 의장인 멜로디 홉슨 Mellody Hobson(시카고에 본사를 둔 투자회사 에어리얼 인베스트먼트 Ariel Investments의 사장)에게 전화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다음날 새벽 6시(미국 중부시간), 홉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이 순간을 기점으로 그녀와 로버츠 간에는 수없이 많은 전화와 미팅, 이메일, 문자메시지가 오갔다. 홉슨은 “한동안 그 누구도 눈을 붙일 틈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컴캐스트에게 빨리 움직여야 하고, 인수 제안은 주당 35달

러 선을 ‘의미 있는 정도로’ 넘어야 한다고 했다(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은 당시 주당 20달러 중반 선에 거래됐으나, 중국측의 인수 시도로 입지가 다소 유리해진 상황이었다). 최근 몇 년간 굼뜬 의사결정으로 질타를 받았던 컴캐스트는 번개처럼 신속하게 인수를 추진했다.

바로 그 주말, 로버츠를 비롯한 고위 임원들은 홉슨과 캐천버그를 만나기 위해 필라델피아 본사를 떠나 LA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독자들의 예상대로) 그들은 조찬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4월 말 드림웍스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제안을 받았다. 총 주식가치 38억 달러, 현금으로 주당 41달러를 주주들에게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컴캐스트는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을 유니버설 그룹 산하에 편입시킬 계획이었다. 인수에 성공하면 넷플릭스와 콘텐츠 개발 협상을 한창 벌이던 드림웍스의 TV 제작 부문도 확보할 수 있었다. 컴캐스트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자료에서 이 인수가 ‘NBC유니버설의 장편 애니메이션 사업 강화, 테마파크 내 놀이기구 확대와 함께 어린이 TV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함정이 하나 있었다. 캐천버그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 했다. ‘슈퍼배드’, ‘미니언스’ 시리즈를 제작한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 Illumination Entertainment의 창업자 겸 CEO인 크리스 멜레댄드리 Chris Meledandri를 필두로, 유니버설 그룹에는 이미 애니메이션 전문 경영인이 여럿 있었다. 캐천버그는 드림웍스의 유튜브 채널인 오섬니스TV AwesomenessTV 등 새로운 미디어 매체를 감독하기 위해 한동안 드림웍스에 남게 되지만, 그건 명예직 내지는 부수적인 역할일 뿐이었다.

캐천버그는 “떠나야 한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나는 할 말을 잃었다”고 고백했다. “며칠만 더 있었으면 (중국 사모펀드의 인수로) 그 반대가 될 상황이었기 때문에 조금 더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컴캐스트의 제안은 거절하기에 너무 매력적이었다. 홉슨은 “주주들에게 최대한의 가치를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주당) 41달러를 거절할 순 없었다.” 그리고 캐천버그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받아들였다. 로버츠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제안이 적절하다는 걸 깨달은 캐천버그가 먼저 후임자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겠다고 선뜻 밝혔다”고 말했다. “인수 전날 밤, 그는 계획대로 다음 날 아침 발표가 나올 수 있도록 24시간을 거의 꼬박 일하면서 남아 있는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데 몰두했다. 어떤 측면으로 봐도 훌륭한 리더의 모습이었다.”

과거의 모습<BR>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멜로디 홉슨 회장(가운데)과 그녀의 남편이자 스타워즈 제작자인 조지 루카스와 함께한 캐천버그(오른쪽). 홉슨은 지난 봄 드림웍스를 컴캐스트에 매각하는 협상을 이끌었다.과거의 모습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멜로디 홉슨 회장(가운데)과 그녀의 남편이자 스타워즈 제작자인 조지 루카스와 함께한 캐천버그(오른쪽). 홉슨은 지난 봄 드림웍스를 컴캐스트에 매각하는 협상을 이끌었다.


4월 28일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이사회가 표결을 진행했다. 홉슨은 로버츠에게 문자메시지로 결과를 전했다. ‘통과.’ 그리고 8월 22일 인수 협상이 공식적으로 마무리됐다. 그 날 오후 캐천버그는 어깨에 배낭을 매고 자신의 흰색 테슬라 모델 S에 올라탔다. 드림웍스 CEO로서는 마지막 퇴근 길이었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 독립된 회사로 운영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이미 확실해진 상황이었다. 홉슨은 “이미 선고가 내려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며 “독립 제작사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홉슨이 이런 상황을 몰랐다면 이상한 일이다. 그녀의 남편이자 스타워즈 시리즈를 만든 조지 루카스 George Lucas 감독은 이미 2012년 자신의 제작사 루카스필름 Lucasfilm을 디즈니에 매각한 바 있다.


캐천버그도 드림웍스 SKG의 운명을 통해 비슷한 교훈을 얻었다. 1994년 출범 당시만해도 드림웍스 SKG의 목표는 65년 만에 처음으로 신생 대형 제작사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 ‘글래디에이터’ 등 몇 편의 히트작에도 불구하고 드림웍스 SKG는 휘청거렸다. 2006년 애니메이션 부문을 분사시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는 실사영화 제작 부문을 엔터테인먼트 그룹 비아컴 Viacom의 자회사 패러마운트에 매각했다. 훗날 패러마운트는 실사영화 제작 부문을 다시 매물로 내놓았고, 몇 번의 우여곡절 끝에 스필버그를 비롯한 몇몇 투자자들이 지난해 재인수에 성공했다. 그리고 컴캐스트의 유니버설 영화사와 5년간 배급 계약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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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천버그는 “우리는 하늘의 별, 달, 해도 따오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그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긍정적이고 야심 찬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현실이 결코 약속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필버그와 게펀도 마찬가지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캐천버그도 깨달았듯, 애니메이션의 세계에선 약속과 현실 간의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웠다.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부문은 모회사의 어떤 작품보다도 더 가치가 높은 지적재산권을 창출했다. 제대로 만든 어린이용 만화영화는 엄청난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사랑스럽고 쉽게 잊히지 않는 캐릭터를 창조하면, 영화 속편, TV시리즈, 각종 관련 상품을 통해 최초 투자액을 회수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수월해진다.

물론 상대적으로 쉽다는 뜻이다. 애니메이션 제작에 드는 시간과 비용은 만만치않다. 아이디어 구상, 스토리보드 작업, 머리카락의 움직임과 흩날리는 눈의 질감 같은 각종 세부사항의 컴퓨터 CG 작업 등 여러 과정을 거치는 데 일반적으로 3~4년 정도가 소요된다. 드림웍스 장편 애니메이션의 평균 제작비는 마케팅 비용을 제외하고도 1억 4,000만 달러에 육박한다. 그럼에도 캐천버그는 ‘슈렉’, ‘쿵푸 판다’, ‘마다가스카르’, ‘드래곤 길들이기’ 등 최소 4개 시리즈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22년간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작품들은 극장에서 평균 4억 2,1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비디오게임과 장난감 등 각종 관련 상품의 라이선스 수익은 제외한 수치다. 캐천버그는 “영화 제작은 이제 하나의 투자 포트폴리오가 됐다”고 말했다. “포트폴리오 안에는 블록버스터 히트작, 블록버스터 실패작, 그 중간이 섞여 있다.”

문제는 비교적 작은 제작사의 경우 실패가 몇 번 연속되면 심각한 적자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2001~2012년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은 17개 작품을 잇달아 성공시켰다. 하지만 ‘가디언즈’, ‘터보’, ‘천재 강아지 미스터 피바디’가 계속 실패하면서 총 1억 5,000만 달러 이상의 손실을 봤고, 그 결과 자산가치 축소를 감수해야 했다.

상장 회사라는 점도 이 같은 어려움에 한몫을 했다. 디즈니 CEO 밥 아이거 Bob Iger는 “상장기업은 신작을 출시할 때마다 성공을 거둬야 한다는 엄청난 압박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캐천버그의 커리어 내내 동료이자 파트너이자 경쟁자였다(캐천버그는 90년대 초 디즈니 CEO 후보에 올랐던 적이 있다). “창조적 과정은 특성상 성공과 실패를 모두 수반한다. 하지만 실패는 용인되지 않는다.” 디즈니와 컴캐스트 같은 재벌들은 다양한 유통채널과 수익원을 활용해 손실을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드림웍스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며, 1년에 1~2개 작품밖에 내놓지 못한다. 그 결과 신작의 개봉 첫 주 성적이 실망스러울 때 곧바로 주가가 폭락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가디언즈’ 개봉 이후 주가는 하루 만에 5%, ‘터보’ 때는 7% 급락했다.

캐천버그는 드림웍스가 자사의 최고 실적보다 80배 이상 높은 연매출을 자랑하는 컴캐스트의 산하로 들어가면, 안정성뿐만 아니라 회사에 꼭 필요했던 ‘규모의 경제’에도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컴캐스트가 슈렉과 쿵푸 판다를 자사 소속 TV와 테마파크에서 적극 활용한다면, 미래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미국 가정에서 캐천버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시아로의 선회<BR>2014년 상하이 드림센터 엔터테인먼트 복합단지의 마스터플랜을 공개하는 자리에 참석한 캐천버그(오른쪽 세 번째)와 차이나 미디어 캐피널의 리루이강 회장 겸 CEO(가운데). 중국시장용 영화 제작을 위해 두 사람이 설립한 합작벤처 오리엔탈 드림웍스는 할리우드에서 점점 커지는 중국시장의 중요성을 방증하고 있다.아시아로의 선회
2014년 상하이 드림센터 엔터테인먼트 복합단지의 마스터플랜을 공개하는 자리에 참석한 캐천버그(오른쪽 세 번째)와 차이나 미디어 캐피널의 리루이강 회장 겸 CEO(가운데). 중국시장용 영화 제작을 위해 두 사람이 설립한 합작벤처 오리엔탈 드림웍스는 할리우드에서 점점 커지는 중국시장의 중요성을 방증하고 있다.


물론, 캐천버그가 이끌었던 선구적 파트너십 계약 덕분에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은 이미 가정용 스트리밍 시장에서 만만찮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캐천버그는 넷플릭스의 최고콘텐츠담당자(CCO) 테드 새런도스 Ted Sarandos와 예전부터 아는 사이였다. 넷플릭스가 특유의 붉은 봉투에 DVD를 배송하는 대여업체로 유명세를 탔던 2004년, 두 사람은 함께 혁신적 마케팅을 기획했다. 새런도스는 “붉은 봉투를 처음으로 사용하지 않은 건 녹색 봉투를 쓴 ‘슈렉 2’ 이벤트부터였다”고 말했다. 녹색은 물론 슈렉의 피부 색이다. “그건 분명 캐천버그의 아이디어였다.”

더 좋은 아이디어도 있었다. 대부분의 제작사들이 넷플릭스와 파트너 맺기를 꺼려하던 시기에, 회사는 일찌감치 넷플릭스 스트리밍 서비스와 콘텐츠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캐천버그에 따르면, 이를 제안한 사람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사장 앤 데일리 Ann Daly였다. 데일리는 전화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우리 영화를 시청하는 방식을 고려해 볼 때, 언제든 볼 수 있는 VOD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2011년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은 16년간 이어온 케이블 채널 HBO와의 계약을 종료하고 넷플릭스에 방영권을 넘기는 전례 없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극장 개봉이 끝난 드림웍스 작품은 이제 오직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다. 데일리는 “영화제작사 중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컴캐스트로 인수된 이후 드림웍스를 떠났다.

2013년 여름, 드림웍스는 향후 수 년간 총 300시간 분량의 자체 제작 시리즈물을 넷플릭스에 공급한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콘텐츠 기반은 ‘슈렉 영화 속 장화 신은 고양이’와 80년대에 컬트적 인기를 모았던 작품인 ‘볼트론’의 리메이크 등 드림웍스의 지적재산이었다. 두 회사는 지난 1월 자체 콘텐츠를 추가 제작(1,600부작 분량)하고 배급 지역을 전 세계로 확대한다는 내용으로 계약을 연장했다.

스트리밍 서비스 훌루 Hulu의 CEO 출신으로 드림웍스 이사를 지낸 제이슨 카일러 Jason Kilar는 “캐천버그는 오래 전부터 디지털의 가능성을 믿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고 새로운 뭔가에 대해 들었을 때 쉽게 무시를 한다.”

결론적으로 캐천버그는 넷플릭스의 거대한 잠재력을 간파하고, 드림웍스가 소유한 지적재산에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했다. 다른 콘텐츠 제작자들도 재빨리 이 공식을 추종했다. 캐천버그는 “넷플릭스와의 협력 관계는 컴캐스트가 드림웍스를 인수하게 된 또 하나의 요인”이었다고 말했다. 유니버설의 영화 엔터테인먼트그룹 회장 제프 셸 Jeff Shell도 이에 동의한다. “우리 회사는 지금까지 어린이용 TV 애니메이션을 만들 역량이 전혀 없었다.” 그는 “갈수록 넷플릭스가 아이들이 처음 TV에서 접하고 시청하는 주요 매체가 되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2014년 컴캐스트가 타임워너 케이블 Time Warner Cable 인수를 시도했을 때 넷플릭스가 거센 반대 로비를 펼쳤던 점을 떠올려 보면, 두 회사의 긴밀한 협력이 잘 상상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업계 판도가 급격히 변화하는 시기에는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캐천버그가 이제는 옛 것이 된 명함을 꺼냈을 때, 기자는 아침 피자를 반쯤 먹은 상태였다(서두에서 썼듯이 멋진 식당이었다). 캐천버그가 2012년 중국에 설립한 오리엔탈 드림웍스 Oriental DreamWorks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그는 뭔가를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꺼내려 했다. 한 면에는 일반적인 명함이 그렇듯, 캐천버그의 이름과 직함, 그리고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왼쪽에는 초승달 위에 앉아 낚시질을 하는 소년의 실루엣인 드림웍스 로고가 그려져 있었다.

캐천버그는 명함을 돌려서 뒷면을 보여주었다. 그는 “몇 년 전에 만든 것이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이 명함이 모든 걸 바꿔 놨다”고 말했다. 명함 뒷면에는 똑 같은 내용이 중국어로 적혀 있었다. 그러나 로고는 달랐다. 작은 소년이 아닌, 꼭 껴안고 싶은 판다 한 마리가 달 위에 앉아 있었다. 물론 낚시질 중이었다.

“그는 (중국에서) 사람들에게 이 명함을 보여주자,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반응이었다”고 설명했다. “쿵푸 판다의 주인공인 포가 “중국의 미키 마우스가 될 수 있으며, 드림웍스가 중국인의 일상 속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중국인들이 매우 기뻐했다”는 것이었다.

약 6년 전 중국의 시장 및 정치적 기류 변화를 감지한 캐천버그는 협력 관계를 맺을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 2011년 런던 방문을 계기로, 그는 세계적 광고홍보사 WPP의 마틴 소럴 Martin Sorrell CEO에게 조언을 구했다. 소럴은 WPP의 이사이자 투자업체 차이나 미디어 캐피털 China Media Capital의 회장인 리 루이강 Li Ruigang과 대화해 볼 것을 권유했다. 캐천버그는 그 날 “호텔 방으로 돌아가 리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말했다. “창 밖의 하이드 파크를 보면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짰다.”

아시아로의 선회<BR>오리엔탈 드림웍스의 첫 작품인 ‘쿵푸 판다 3’의 중국 시사회에서 포즈를 취한 캐천버그와 리.아시아로의 선회
오리엔탈 드림웍스의 첫 작품인 ‘쿵푸 판다 3’의 중국 시사회에서 포즈를 취한 캐천버그와 리.


캐천버그의 목표는 중국 시장 배급이 아니었다. 상영은 이미 이뤄지고 있었다. 그는 진정으로 중국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미국 영화의 중국어 더빙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중국 관객을 겨냥한 영화를 제작하는 합작벤처를 설립하고자 했다. 물론 할리우드 영화는 (자국 시장에서 흥행에 실패한 경우에도) 중국에서 대체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외국 영화에 대해 엄격한 수입 쿼터제를 적용하는 등 마케팅과 배급에 제약을 가하고 있다. 캐천버그는 “결국 중국이 원하는 건 중국판 디즈니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중국은 디즈니를 사랑한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관찰 끝에 중국이 진짜 원하는 건 자신들만의 디즈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리는 캐천버그를 중국으로 초청했다(그 때부터 그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중국을 방문했다). 두 사람은 중국 애니메이터들이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영화를 제작해 전 세계로 수출하는 회사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 지분 45%를 갖고 영화 공동제작을 담당했다. 캐천버그는 리의 도움을 받아 중국 당국의 승인을 받고 중국 투자자들의 자금을 끌어 모았다. 그렇게 해서 2012년 오리엔탈 드림웍스가 탄생했다(캐천버그는 “중국 측에서 제안한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쪽에선 동양에 대한 편견이 담긴 이름이라 우려했지만, 중국의 생각은 반대였다).

현재까지 오리엔탈 드림웍스가 제작한 작품은 ‘쿵푸 판다 3’ 단 한 편뿐이다. 하지만 좋은 출발이었다. 이 영화는 올 1월 개봉해 중국 영화시장에서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의 개봉 첫 주말 흥행 기록을 세웠고, 전 세계적으론 5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 아닌 합작벤처 제작 형태가 가져다 준 장점은 상당했다. 중국 정부는 산하 영화위원회가 극장 개봉일을 정해 주기 전까지 해외 영화의 마케팅을 금지하고 있다. 몇 주 전에야 개봉일이 정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오리엔탈 드림웍스는 중국 시장에 광고를 쏟아 붓기에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현재는 미-중 합작 영화라는 각본에서 이제 막 1막을 지난 상황이다. 오리엔탈 드림웍스는 2018년부터 신작 영화를 매년 한 편씩 내놓을 예정이었지만, 컴캐스트가 드림웍스의 지분을 인수한 만큼 이 계획이 그대로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리는 미-중 합작 사업모델의 형태가 앞으로도 계속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시장은 여전히 너무나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캐천버그도 “결과가 어떨지 아직 확실하지 않다”며 평소와 달리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다른 할리우드 제작사들도 드림웍스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워너 브러더스도 2015년 차이나 미디어 캐피털과의 자체 합작벤처인 플래그십 엔터테인먼트 그룹 Flagship Entertainment Group의 출범을 선언한 바 있다. 이 기업의 목표는 중국어 영화의 제작과 전 세계 배급이다.

중국과 합작하는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도 캐천버그의 다음 목표일 수 있다. 그는 LA에 새 사무실을 준비 중이다(인터뷰를 진행한 피자집에서 멀지 않다). 새 벤처에 참가할 파트너와 투자자를 구했다는 소식도 들여온다. 그는 인터뷰 동안 자세한 내용에 대해선 함구하면서 “나는 기술과 뉴미디어의 발전 모습에 푹 빠져있다”고만 말했다. 캐천버그의 지인들에 따르면, 그는 오랫동안 멘토였던 배리 딜러가 구축한 모델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딜러의 IAC는 매치닷컴 Match.com과 틴더 Tinder 같은 만남 서비스에서 칼리지 유머 College Humor와 비미오 Vimeo 같은 동영상 사이트까지 다양한 자회사를 보유한 재벌 기업이다. 캐천버그가 자신의 구상을 이 모델에 어떻게 적용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캐천버그에게 전혀 은퇴 의사가 없다는 점이다. 질문을 던지자 그는 말도 안 된다는 투로 “그럴 생각은 없다”고 잘라말했다. “나에겐 일이 곧 행복이다.” 아이들에게 수백만 장의 영화 표를 판 사람답게, 캐천버그는 자신의 철학을 한 마디로 정리하기 위해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작품 목록을 집어 들었다. 그는 ‘쿵푸 판다’에서 주인공의 사부인 늙은 거북 오그웨이 Oogway가 한 말을 인용했다.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알 수 없지만, 오늘은 선물이다. 거기에서 바로 ‘오늘(present)’이 유래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By Michal Lev-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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