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서방’의 기치를 내걸고 러시아와 터키·이란이 시리아 사태 해결을 위해 뭉쳤다. 특히 러시아와 터키는 터키 주재 러시아대사의 피격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에도 맞잡은 손을 놓지 않고 협력을 다짐했다.
20일(현지시간)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만난 러시아·터키·이란 등 3국 외교장관은 서구의 입김이 배제된 상황에서 시리아 사태 중재를 추진하는 안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3국 외교장관은 공동성명에서 “러시아와 터키·이란이 시리아 평화협상의 보증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들은 시리아에서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와 반군조직 자바트 알누스라에 대항해 공동전선을 펴기로 했다. 한때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 축출을 주장했던 터키는 이날 합의를 기점으로 대시리아 정책의 목표를 ‘정권교체’에서 ‘테러조직 격퇴’로 공식 전환했다.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지난 2011년 이래 이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미국과 유엔은 이날 공동성명에서 배제됐다. 외교가에서는 미국과 지리멸렬한 휴전협상을 진행했던 러시아가 공동의 이익을 내세워 두 나라를 포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공동성명에서 미국이 빠진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미국의 실책론이 제기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시리아 사태가 정권교체기 미국의 외교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며 결과적으로 백악관이 시리아 알레포 분쟁에 제때 대응할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친러 성향이 러시아의 독자행보를 사실상 허락한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최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터키와 직접협상에 나서며 “미국과 함께 일하는 것은 실속이 없다”고 질타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시리아를 둘러싼 각국의 복잡한 이해관계도 배경으로 꼽힌다. 시아파 맹주인 이란이 수니파 무장단체인 IS와 대립각을 세우며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터키 역시 미국이 알아사드 정권 타도를 내건 쿠르드노동자당(PKK)과 밀접한 시리아 반군을 지원하면서 급격히 러시아 쪽으로 기울고 있다. 여기에 올해 7월 군부 쿠데타를 계기로 미국·유엔 등과 멀어진 것도 터키의 친러 행보를 재촉하고 있다.
특히 지난 19일 발생한 안드레이 카를로프 터키 주재 러시아대사의 피격사건에도 러시아와 터키는 변함없는 협력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 사건을 두고 터키 정부는 20일 저격을 명령한 배후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적이자 쿠데타 주모자로 거론된 재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이라고 지목하며 다시 한번 미국과의 갈등을 예고했다. 터키의 전직 외교관인 무라트 빌한은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터키도 러시아도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 반대를 선호할 것”이라며 “당장 터키는 러시아가 필요하고 러시아 역시 터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