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김태용 감독은 이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소재를 통해 ‘계급대립’이라는 사회적 주제를 끌고 들어온다. 가깝게는 생존을 위해 자신의 자존감을 버려야 하는 한 여성의 처절함을, 멀게는 ‘이사장 딸’이라는 거대한 뒷배경으로 단숨에 정교사 자리를 차지한 혜영(유인영 분)과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정교사는 될 가망이 없는 계약직 여교사 효주(김하늘 분)의 관계를 쉽사리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여교사’에서 보여지는 계약직 여교사의 현실은 실로 처절하고 끔찍하다. 학년주임은 공공연하게 “정교사들이야 임신하면 축하해줄 일이지만, 당신들 같은 계약직 교사들은 정교사 달 때까지 임신이나 출산은 꿈도 꾸지 마”라고 노골적으로 차별을 조장하고, 심지어 제자들조차 “XXX아, 진짜 선생도 아닌 주제에”라며 그림자도 밟지 말아야 한다던 스승의 면전에 대고 욕을 퍼붓는다. ‘효주’를 연기한 김하늘조차 처음 ‘여교사’의 시나리오를 받아들고는 “시나리오 속 효주가 너무 굴욕적이고 자존심 상해서 내가 연기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을 정도다.
김태용 감독은 계약직 여교사 ‘효주’와 이사장 딸인 정교사 ‘혜영’의 사이에 감도는 자존감과 열등감의 대립을 남제자 재하(이원근 분)와의 육체관계를 통해 분출시키기 시작한다. 우연히 유인영과 이원근의 육체관계를 엿보게 된 김하늘은, 이를 무기로 유인영을 굴복시키며 자존감을 되찾고 이원근과 육체관계를 맺으며 우위에 선다. 하지만 그 이면의 진실을 알게 된 순간 잠시 되찾았던 김하늘의 우월감은 다시 추락을 하게 되고, 억눌리고 왜곡된 김하늘의 욕망은 비정상적인 형태로 분출하게 된다.
‘여교사’는 ‘로망스’와 ‘동갑내기 과외하기’로 청순한 선생님의 이미지를 다진 김하늘이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제자와 육체관계를 맺는 ‘여교사’라는 파격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눈길을 끄는 영화다. 하지만 ‘여교사’는 그 이전에 김태용 감독의 패기 있는 연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편 ‘얼어붙은 땅’으로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진출하며 두각을 나타낸 김태용 감독은 한국에서도 유럽 예술영화의 문법을 가장 잘 이해하는 젊은 감독 중 한 명이고, 그의 이런 장기는 억압된 욕망과 분출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는 유럽 예술영화의 주된 소재를 그리는 ‘여교사’에서 빛을 발한다.
자극적이고 대중적인 오락영화에 길들여진 관객이라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김태용 감독은 ‘여교사’에서 숨이 막힐 정도로 차분하게 김하늘이 연기한 계약직 여교사 ‘효주’의 지리멸렬한 일상을 훑어낸다. 그리고 이런 일상을 견뎌내며 쌓여가는 김하늘의 억압된 에너지가 풍선처럼 팽팽해진 순간, ‘여교사’는 응축된 열등감을 분노로 폭발시키며 영화를 보던 관객들이 눈을 질끈 감을 정도로 강한 파국으로 이끌어간다.
물론 아직 젊은 감독이기에 장면과 장면을 이어주는 부드러운 연결이나 상징의 활용 등 기교적인 면에서는 분명 아쉬움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동안 주로 청순발랄한 이미지로 ‘로코퀸’이라는 호칭을 들어오던 배우 김하늘의 무겁게 찍어누르는 연기가 ‘여교사’에 더해지면서 김태용 감독이 미처 매만지지 못한 아쉬운 여백을 배우의 연기로 채워나간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평범하게 교무실에서 샌드위치를 꺼내 먹는 김하늘의 연기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참 동안 머리를 멍하게 만드는 서늘함을 관객의 등골에 새길 것이다.
김하늘은 ‘여교사’를 통해 모든 여배우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배우의 모습에 한 발 더 다가서게 됐다. 이미 ‘블라인드’를 통해 색다른 연기변신을 시도해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여교사’는 김하늘이라는 배우가 밝고 명랑한 모습 외에도 극도로 어두운 연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그렇기에 김하늘이라는 배우에게는 ‘여교사’의 ‘효주’가 배우로서의 활동영역을, 그리고 본인의 연기를 한층 넓혀준 인생 캐릭터가 될 것이다. 2017년 1월 4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