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선비’라고 하면 조선시대를 연상한다. 하지만 ‘선비’의 연원은 멀리 고조선까지 닿아 있다. 중국인의 도교는 노장사상에서 나왔다. 중국의 신선은 노장사장과 관련이 깊다. 한국의 신선은 중국의 노장사상이나 도교와는 무관하다. 시간적으로 고찰해보면 한국의 신선사상이 중국보다 훨씬 앞선다. 고조선의 신선사상이 중국으로 넘어가 도가사상에 씨앗을 제공해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선비는 한자가 없는 순수한 우리나라 말이다. 한자를 사용할 때 고대인들은 선비를 선인(仙人) 또는 선인(先人)으로 기록했다. 선인은 산인(山人)을 가리키기도 하고 신선(神仙)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국인의 신선(神仙) 또는 선인(仙人)의 뿌리는 단군왕검이다. ‘삼국사기’에서는 ‘평양은 본래 선인 왕검이 살던 집(平壤者本仙人王儉之宅也)’으로 표기하고 있다. 단군은 우리나라 최초의 선인, 즉 선비가 되는 셈이다. 단군을 우리나라 최초의 선비로 보는 관점은 조선시대에도 이어진다. 조선의 홍만종(1643∼1725)이 지은 ‘해동이적’은 우리나라 역대 신선의 전기를 모은 신선 열전이다. 이 책에서도 최초의 신선은 단군으로 기록되어 있다. 홍만종은 중국 도교의 뿌리는 노자·장자이고 우리나라 해동 도교의 뿌리는 환웅·단군이라며 뿌리가 전혀 다르다고 했다.
중국 도교와 해동 도교가 불로장수의 신선이 되려는 목표는 비슷하다. 다만 중국 도교는 불로초라는 단약(丹藥)을 먹어 신선이 되려고 추구한 반면 우리나라의 해동 도교는 산수(山水)의 기(氣)를 호흡해 수련을 해 신선이 되기를 추구했다. 해동 도교는 단전호흡에 역점을 두는 수련 도교임을 의미하게 된다. 해동 도교는 우리나라 금수강산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에서 우러나온 수련 도교이며 동시에 사상 도교임을 홍만종은 짚어냈다.
고대 우리나라 최초의 종교는 선교(仙敎)라고 불렸다. 이것이 후에 신교(神敎)로 진화한다. 그래서 유(儒), 불(佛), 선(仙)이라는 말이 생겼다. 신라시대에 ‘선사(仙史)’라는 책이 있었는데 이는 ‘선교의 역사’ 또는 ‘선비의 역사’라는 의미다. 우리나라 최초의 종교인 선교(仙敎)는 조선시대 이후 신교(神敎)라는 호칭으로 널리 불렸다. 신을 숭배하는 종교라는 뜻이다. 이는 이웃 나라 일본으로 건너가 신도(神道)라는 종교로 진화한다. 조선시대 이종휘는 ‘동사(東史)’에서 “환웅이 신으로 교를 만들었다(以神設敎)”고 기록했다. 그는 환웅이 시행한 홍익인간 정신이 바로 신교의 내용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신라시대 최치원은 ‘난랑비서(鸞郞碑序)’에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는데 이를 풍류라고 한다. 풍류의 도는 가르침을 세울 근원이 선사(先史)에 상세히 구비돼 있다. 실로 유불선(儒佛仙)의 가르침이 이미 포함돼 있으니 이를 접화군생(接化群生)이라 한다. 집에 들어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밖에 나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니 노나라 공자의 가르침이 들어 있고, 말없이 그러함을 무위로 교화하니 노자의 가르침이 들어 있고, 악을 행하지 않고 선을 받들어 행하니 석가의 가르침이 포함돼 있도다”라고 기록했다.
최치원은 화랑정신을 ‘나라의 현묘한 도’라 말하고 호칭을 ‘풍류’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풍류는 화랑도의 핵심 정신이다. 풍류(風流)는 ‘흐르는 바람’이다. 바람은 그 흐름에 있어 피하지 않고, 머물지 않고, 지나치지 않고, 쉬지 않는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피하지 않는 바람의 정신은 도전 정신이다. 어떤 것에도 머물지 않는 바람의 정신은 개척 정신이다. 아무리 사소해도 소홀히 지나치지 않는 바람의 정신은 주인 정신이다. 쉬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바람의 정신은 소명 정신이다. 풍류는 내용에 도전 의식, 개척 의식, 주인 의식, 소명 의식이 뿌리내리고 있다.
최치원에 따르면 풍류도는 우리나라 최초의 종교인 선교에 근원을 두고 신선사상과 천지신명 사상이 융합돼 천지인 합일 사상으로 표출된다. 풍류도의 천지인 합일 사상은 고조선의 건국 이념으로 알려진 홍익인간(弘益人間), 제세이화(濟世理化), 성통광명(性通光明) 정신에 맞닿아 있는 것이다. 그 뜻은 ‘널리 이롭게 해 인간 생활을 복되게 하라’ ‘세상을 교화해 자연의 이치와 하나 되게 하라’ ‘하늘이 내린 인간 본성을 밝혀 더욱 빛내라’이다.
고조선의 건국 이념은 신라의 ‘화랑 정신’에 투영됐고 고려 왕건의 ‘훈요십조’의 근간이 됐으며 정도전과 이성계가 역성혁명을 할 때 백성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포한 조선의 ‘경국대전’의 기본 정신이 됐다. 그리고 조선 중기 꽃피운 ‘조선실천성리학’의 대강이 됐다. 우리는 선비라는 단어를 들으면 조선시대만 연상할 것이 아니라 고려·신라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고조선의 단군왕검과 건국 이념을 연상하는 국민이 돼야 할 것이다.
자국 이기주의로 지구촌의 대립이 격화하는 가운데 우리는 최순실 사태로 극심한 혼란을 맞고 있다. 혼란을 풀어나가야 할 정치권은 소통 장치가 고장 나 있고 북에서는 핵무기 불장난으로 민족의 미래가 어두워지고 있다. 다시 선비정신 회복을 기치로 내걸고 우리의 정신을 가다듬어야 할 시기에 이르고 있다. 김진수 선비리더십 아카데미 회장·전 현대차 일본법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