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007 메모리칩’



“작전 중 사망하거나 작전이 외부에 노출됐을 경우 국가는 당신의 존재를 부정할 것이다. 이 명령문은 30초 후에 자동 폭파(삭제)된다.” ‘007’ 시리즈나 ‘미션 임파서블’ 등의 첩보영화에 이런 대사가 종종 등장한다. 지령 멘트가 나오고 곧 수행 미션이 담긴 장비가 연소되는 장면은 이들 영화의 트레이드 마크다. 혹시 주변에 있을지 모르는 적들로부터 스파이의 존재와 본부의 지령을 완벽하게 숨긴다는 설정이다. 새 시리즈가 나와도 이런 설정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그 방식은 진화하고 있다. 딱 20년 전인 지난 1996년 개봉한 ‘미션 임파셔블1’이나 ‘007’ 시리즈의 초기 버전에 나오는 장면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구식이다. 주인공인 톰 크루즈나 제임스 본드가 비디오테이프를 재생하면 임무 설명 영상이 나온 후 테이프가 순식간에 소각된다. 비디오테이프의 존재를 요즘 청소년들은 거의 모르지 싶다. 첩보영화 속 미션 전달 수단은 비디오테이프에서 노트북·휴대폰을 거쳐 종이 등으로 바뀌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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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원이 특수 종이에 쓰인 메시지를 읽으면 5초 후에 자동으로 불타 없어진다는 식이다. 이처럼 영화에 등장한 첨단 기술이 얼마 안 돼 현실화되고는 한다. 최근 KAIST 연구팀이 첩보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보안용 메모리칩을 개발했다는 소식이다. 이 칩은 물에 쉽게 녹는 종이비누를 회로 기판으로 사용해 소량의 물로도 10초 내에 저장된 정보를 없앨 수 있는 모양이다.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칩은 보통 정보를 10년 정도 유지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든 정보를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사물인터넷(IoT) 시대에 접어들면서 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 또한 커졌다. 이에 따라 전 세계 연구기관이나 대학 등에서 물에 녹는 메모리칩이나 불에 쉽게 타는 종이 기판 소자에 대한 연구가 경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번 KAIST의 연구 성과로 상용화 가능성이 높아졌다니 반갑다. /임석훈 논설위원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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