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음력 11월19일)은 418년 전인 1598년(선조 31)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싸움인 노량해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순국한 날이다. 그동안 해마다 4월28일 장군의 탄신일에는 떠들썩하게 기념행사를 치렀지만 정작 뜻깊은 순국일은 그냥 지나쳐버린 듯해 아쉬움이 컸다. 올해에는 장군의 순국일을 맞아 그의 뜨거웠던 나라 사랑과 겨레 사랑의 깊은 뜻을 거듭 되새겨보자. 혹시 아직도 안 읽은 사람이 있다면 ‘난중일기’라도 읽어보자.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7년 동안 진중에서 쓴 일기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선조 25년(1592) 정월 초하루부터 공이 순국한 마지막 싸움인 노량해전 이틀 전인 선조 31년(1598) 11월17일까지의 기록이다. ‘난중일기’는 치열하게 벌어진 전투의 긴박한 상황에서도 거의 빠짐없이 기록된 전쟁일기로 임진왜란의 전개 과정은 물론 인간 이순신에 관한 연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사료다. ‘난중일기’에는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전선의 하루하루, 쉴 새 없이 벌어지는 왜적 함대와의 전투 등 전쟁에 관한 기록뿐 아니라 나라와 겨레의 참상을 걱정하는 불타는 애국심, 팔순 노모의 안위를 염려하는 지극한 효성, 부하 장졸을 때로는 너그럽게 포용하고 때로는 엄하게 다스리는 최고사령관으로 추호도 사심 없는 신상필벌의 자세 등 지도자가 갖춰야 할 탁월한 통솔력까지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난중일기’ 읽기를 권하는 것은 우리가 또다시 국난에 버금가는 난국을 맞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국난 극복의 생생한 교과서요 국민 필독서라고 할 수 있는 ‘난중일기’를 다시 한 번 읽어보자는 것이다.
이순신은 가난한 선비의 아들로 태어나 54년의 길지 않은 일생을 보내는 동안 온갖 고난에도 오로지 충효인의와 애국애민 정신으로 일관한 우리 민족사의 대표적 위인이다. 전쟁에 임해서는 필승의 신념과 비상한 전략전술로 백전백승한 불세출의 명장 이순신, 그는 마지막 싸움인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고귀한 한목숨을 바칠 때까지 지극한 충성심으로 헌신했고 극진한 효심과 자애로움을 다했으며 부하들을 너그럽게 감싸주고 창의력을 길러주며 참다운 삶의 길을 제시해준 겨레의 큰 스승이었다.
1597년 7월14일 원균이 칠천량 전투에서 대패하자 이순신이 피땀 흘려 육성한 조선 수군은 하루아침에 궤멸해버렸다.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빠지자 선조는 다시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했다. 겨우 12척의 전함에 120명의 군사와 무기를 수습했더니 조정은 바다를 포기하고 육지에서 싸우라고 했다. 수군을 없애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이순신은 비장한 결의를 담은 장계를 올렸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남아 있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면 막을 수 있습니다. 지금 수군을 폐지하면 적이 바라는 바로, 적은 호남을 거쳐 쉽게 한강까지 진격할 것입니다. 오직 그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비록 전선이 적으나 신이 아직 살아 있으므로 감히 무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순신은 남은 12척의 배에 새로 1척을 보태 조선 수군을 재건했다. 그해 1597년 음력 9월16일 명량해협(울돌목)에서는 동서고금에 전무후무한 바다의 대혈전이 벌어졌다. 왜적은 133척인 반면 조선 수군은 겨우 13척, 게다가 전멸하다시피 대패한 후라 장졸들의 사기도 엉망이었다. 이순신은 겹겹이 포위한 적선들을 뚫고 손수 활을 쏘고 영기(令旗)를 휘두르며 독전했다. 죽음을 무릅쓴 이 같은 악전고투 끝에 적의 대장선을 비롯해 왜선 31척을 격침하자 남은 적함은 뱃머리를 돌려 도주했다. 참으로 기적적인 대승이었다.
돌이켜보건대 우리 민족사가 시작된 이래 숱한 외침을 당했고 구국의 영웅도 많았지만 이순신 장군이야말로 많은 영웅호걸 충신열사 가운데에서도 으뜸가는 민족의 구세주였고 참다운 인간의 길, 충효 정신을 목숨을 바쳐가며 보여주고 간 겨레의 큰 스승이었다.
나라가 또다시 어지럽다. 국난에 버금가는 난국이다. 이 비상한 시기에 모두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 길이 열린다’는 이순신 장군의 불굴의 희생정신을 본받아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자. 그것이 모두가 애국하는 길이다. 황원갑 소설가·역사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