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스타 문화

[인터뷰]‘로미오와 줄리엣’ 문근영, 치열하게 아파하며 성장하는 배우

“빨리 온 봄·여름...반면 ‘가을’이 아직 안 오고 있어요.”

치열하게 아파하며 성장하는 18년차 배우 문근영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준비하며, 벼랑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기분이다”고 말했다.


“처음엔 파이팅이 넘쳤는데, 계속 작품을 분석하고 무대에 오르며, ‘스스로 벼랑 끝으로 몰았구나’란 생각”이 엄습해 온 것.

/사진=샘컴퍼니/사진=샘컴퍼니


2010년 연극 ‘클로저’에 이어 6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섰지만, 무대란 역시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스스로 “서툴고 부족게 많은 배우이다”고 평한 문근영은 “무대 언어를 제대로 구현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TV나 영화의 카메라 연기와는 다른 무대 언어는 배우의 내공에 따라, 관객들이 바스트 혹은 풀샷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능력이 동반 되어야 한다. 하지만 배우가 카메라의 도움 없이 자신의 연기가 가장 잘 보일 수 있게 완벽하게 조절하는 능력은 하루 아침에 터득할 수 없다.

이는 문근영에게 ‘급이 다르구나’라는 자괴감을 갖게 하기도 했다.

“연극 무대에서의 발성, 호흡의 낙차나 몸짓이나 대사를 통해 감지되는 생각의 정확한 변화혹은 에너지 등을 조절하는 게 확실히 미숙하다는 생각을 해요. 매일 매일 고민하고, 더 좋은 쪽으로 방법을 찾아보고 시도하고 있어요. 제가 표현하는 줄리엣이 100 그대로 전달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 역시 진행 중입니다”

‘어렵고 험한 선택’ 앞에 섰지만, 그녀의 표정만은 결연했고 밝았다. 지금은 무대에 온전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전한 문근영은 “아직까지 풀어야 할 과제는 많지만, 나를 돌아보게 해 의미있는 시간”임을 밝혔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서로 원수인 가문에서 태어난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을 하게 되고, 그들의 비극적인 죽음이 가문을 화해하게 만든다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문근영은 어린 소녀가 사랑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여인으로 성장하기까지 과정을 “최고로 행복한 순간에서 최악으로 비극적인 상황으로 던져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문근영은 “두 시간 동안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에너지의 희로애락을 표현” 하기 위해 상대 배우인 박정민과 손 편지도 주고 받으면서, 줄리엣의 감정에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다고 했다.

/사진=샘컴퍼니/사진=샘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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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체력이 좋다’고 자부하는 그녀지만, 이번 연극은 매일 매일이 고난의 연속이었다. 외부의 평가보다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던 것. “감정소모가 커서 그런지 쉽지 않았어요. 정민이와 함께 자양강장제도 나눠 먹으면서 매 순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고, 순간 순간 찾아오는 ‘좌절’ 마저 즐기고 있다”고 말한 것.


“변태처럼 들리겠지만 좌절을 즐기고 있어요. 힘들고 괴롭기도 해요. 좌절감에 더해 자괴감까지 찾아오기도 해요. 그런데 눈물도 안 나요. 눈물 흘리고 그럴 시간도 없거든요. 그 시간에 대본한번을 더 보고, 작품 고민을 하나 더하지 싶으니까요. 그래서 정말 너무 변태 같지만, 이 좌절감과 공포감 또한 너무 미치도록 즐겁게 받아들이면서 하고 있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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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에 철이 들었던 모습으로 20대를 맞이하고, 이제 30대의 문턱에 들어선 배우 문근영. 스스로 17년 배우 생활을 돌아보며, “또래 친구들보다 빨리 살아온 기분이다”고 말했다.

“10대에 철이 들었던 그대로 20대를 맞이했어요. 사람들은 다 철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데, 나만 계절의 템포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주변 사람은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 직급이 올라가는 걸 보며 성장하고 있구나란 느낌을 받아요.

그런데 뭔가 전 예전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 들어요. 서른이든 마흔이든 그 때에 맞는 철이 들겠지요. 그런 시간이 올 거라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젠 조금 철 없이 살아보려고 해요. “

본인의 배우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하며 조곤 조곤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문근영은 “저에겐 봄, 여름이 일찍 왔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가을’이 아직 안 오고 있어요. 그런 느낌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성장과 변화를 갈구하는 그녀의 눈빛엔 천천히 다가오는 가을의 그림자가 보였다.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것 자체에도 큰 용기가 필요했던, 소녀는 자신의 유리 성 밖으로 한걸음 나가고자 했다.

“배우 생활을 일찍 시작 했다고 해서 뭘 많이 가지고 있다거나, 혹은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늘은 조금이라도 더 잘 할 수 있을까? 내 스스로 만족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매일 들어요. 그래도 이것 저것 시도해보면서, 제 딴에는 기특한 한 해를 보낸 것 같아요. (웃음)”

인터뷰 말미 그녀가 전해준 한 마디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셰익스피어 피가 흐르는(?) 그녀의 어머니가 들려준 말이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올 때마다 그녀를 다 잡아 준 힘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사진=샘컴퍼니/사진=샘컴퍼니


“바다를 헤엄쳐 가다가, 거대한 폭풍이 몰아치면 대부분 자기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고 해요. 그런데 바다 한 가운데에선 앞으로 가나 되돌아가나 폭풍을 맞이하게 되는 건 같아요. 그 순간 계속 전진할지 후퇴할지에 대한 결정은 결국 너의 선택이다고요.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어머니의 말을 떠올려요.”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은 초반 표가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표를 구하지 못한 관객들의 발을 구르게 만들었다.

박정민과 마찬가지로 문근영 역시 ‘매진’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아니 오히려 그 이유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궁금해요. 왜 이렇게 매진이 된 거죠? 같이 나오시는 선배님들이 너무 쟁쟁하신 분들이 나와서 그런 것 아닐까요. 제 이름을 듣고 온다구요? 아...부족한 부분 그리고 모자란 부분을 잘 채워서 하겠습니다. 매회 공연마다 절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은 정말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전 들뜨기 쉬운 연말에 대한 감흥도 없고, 크리스마스가 언제인지도 모르고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1월 15일 그 때까진 계속 청춘 줄리엣으로 살아내야죠. 이 작품이 끝나야 겨울이 온 거라 생각할 것 같아요.”

한편, 죽음을 초월한 셰익스피어의 희비극 로맨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연출 양정웅)은 내년 1월 15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개막한다. 영화, 드라마, 뮤지컬, 연극 각 장르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는 박정민, 문근영, 손병호, 서이숙, 배해선, 김호영, 김찬호, 이현균, 양승리, 김성철 등이 함께한다.

정다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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