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1월 4일 개봉을 앞둔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 역시 마찬가지다. 차태현이 연기한 ‘이형’은 사랑하는 연인 현경(서현진 분)에게 프로포즈를 하기 위해 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게 된다.
그 때부터 차태현은 임신한 10대 여고생 말희(김윤혜 분), 외로운 노총각 교사 여돈(배성우 분), 이혼위기의 40대 형사 찬일(성동일 분), 치매로 인해 남편도 알아보지 못하는 할머니 용례(선우용여 분)의 몸에 차례대로 들어가며, ‘이형’이라는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기 위해 여고생 스컬리(김유정 분)의 도움을 받아 자신으로 이들의 사랑을 이뤄주는 ‘큐피드’가 되기로 한다.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는 차태현이 출연해 전국 4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빅히트에 성공한 영화 ‘헬로우 고스트’와 많이 닮아있는 영화다. 차이점이 있다면 ‘헬로우 고스트’는 네 명의 귀신이 차태현에게 빙의가 되어 차태현이 자신의 몸을 통해 그들의 소원을 이뤄주는 이야기였다면, ‘사랑하기 때문에’는 차태현이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 그들의 사랑을 이뤄주는 이야기다. 그야말로 ‘차태현표 코미디’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소소한 웃음과 따뜻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다.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의 개봉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차태현을 만났다. 차태현은 우리가 ‘1박 2일’에서 보던 모습처럼, 그리고 수많은 ‘차태현표 코미디’에서 본 것처럼 쾌활하고 밝은 이미지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아보고는 ‘빙의’라는 소재가 ‘헬로우 고스트’와 겹치는 지점이 많아서 고민을 했어요. 시나리오가 주는 느낌은 나쁘지 않은데, ‘헬로우 고스트’를 해본 저에게는 그렇게 새로울 것이 없는 작품이라서 고민이 됐죠. 그런데 영화의 제목처럼 故 유재하씨의 노래로만 영화를 채울 수 있다는 점이 절 붙잡았어요.”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의 제목은 1987년 발매된 故 유재하의 데뷔앨범이자 유작인 ‘사랑하기 때문에’에서 가져왔다. 그 제목처럼 영화에서는 故 유재하의 노래가 유재하의 목소리 그대로 등장하며, 결말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차태현이 특별히 故 유재하의 열광적인 팬은 아니지만, 유재하의 노래를 들으며 20대를 보냈기에 이것만으로도 ‘사랑하기 때문에’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랑하기 때문에’는 유재하씨의 원곡을 스크린에서 들을 수 있는 영화라는 것이에요. 유재하씨의 노래는 대단해요. 80년대에 나온 앨범인데도 요즘 젊은 친구들도 좋아하잖아요? 다른 사람의 노래가 아니라 유재하씨의 원곡이 스크린에서 나오는 것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해요.”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영화에 유재하씨의 노래가 전부 들어가지는 못했다는 점이에요. 그것 때문에 시작한 영화인데 전곡은 못 쓰더라도 네다섯곡 정도만 더 들어갔어도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지금은 ‘그대 내 품에’ 하나만 더 들어가도 좋았을 것 같은데 영화에는 ‘사랑하기 때문에’와 ‘지난 날’밖에 들어가지 못했어요. 그게 유일한 아쉬움이에요.”
故 유재하의 노래가 출연을 결심하는데 큰 역할을 하긴 했지만,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는 배우로서 ‘차태현표 코미디’라는 말에 묶여서 다소 정체된 모습을 보여주던 차태현에게도 새로운 도전이 엿보이는 작품이기도 했다. ‘헬로우 고스트’와 비슷하지만 여고생부터 할머니까지 넘나드는 빙의 연기도 도전이었고, 결혼 이후 한동안 출연을 자제하던 로맨스 영화를 소화해봤다는 것도 어떤 의미로는 큰 도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결혼하고 나서는 로맨스 연기를 너무 막 해보고 싶지는 않았어요. 결혼한 이후에는 제가 로맨스 연기를 하는 것이 어색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제 자신이 잘 안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자연스럽게 휴먼 코미디 장르에 손이 가게 되더라고요. ‘사랑하기 때문에’에서도 서현진씨와의 로맨스가 있지만, 멜로 같은 느낌의 로맨스는 아니라서 선택하게 됐죠. 언젠가는 저도 한 번 진한 멜로나 로맨스를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나이를 먹어가는 지금은 아이랑 같이 케미를 보여줄 수 있는 슬픈 영화를 해보고 싶기도 해요. 예전이라면 못했지만, 실제로 아버지로 살아본 지금은 충분히 그런 것도 해볼 수 있는 나이가 됐어요.”
차태현에게 ‘차태현표 코미디’라는 장르는 배우로서 지니는 ‘양날의 검’이다. 충무로에서 코미디 영화가 기획될 때 모든 제작자들이 선호하는 1순위 캐스팅이라는 점은 배우로서 장점이지만, 반대로 ‘차태현표 코미디’가 주는 그런 느낌으로 인해 배우로서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는 것은 점차 나이가 들어가는 차태현에게는 아쉬움도 있는 부분이었다. 그래서일까? 차태현은 이날 인터뷰에서도 배우로서 새로움을 갈망하는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코미디를 한다면 ‘차태현표 코미디’보다 예전 ‘투 가이즈’같은 코믹 액션을 한 번 해보고 싶기도 해요. ‘투 가이즈’는 어릴때부터 너무나 좋아하던 박중훈 형이랑 한 영화에서 만났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엄청난 의미인 영화였거든요. 비록 흥행은 실패했지만, 저는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박중훈표 코미디’를 보며 너무나 많이 웃었어요.”
“‘복면달호’도 그런 영화에요. 뒤에 뭔가를 남기지 않는 코미디. 의미를 부여해서 관객의 눈물을 빼려고 점잔을 빼지도 않고 두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웃고 나올 수 있는 영화. ‘차태현표 코미디’를 하는 제가 말하기는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코미디 영화에 그렇게 눈물을 자아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거든요.”
‘차태현표 코미디’라는 말 뿐 아니라 현재 출연하고 있는 KBS 예능 ‘1박 2일’도 배우로서 차태현의 변신을 막아서는 난관이기도 하다. 차태현은 ‘1박 2일’을 통해 국민 호감 이미지를 확고히 하며 큰 인기를 얻었지만 배우로서 나아가는 지점에서는 방송인의 이미지가 내심 걸림돌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김주혁 형이 ‘1박 2일’을 그만 둔 것도 사실 그런 이유였죠. 배우로서 악역을 연기해야 하는데 예능에 나와서 웃고 있으면 좀 그렇잖아요? 저는 그나마 그런 의미에서는 배우로서의 이미지가 예능하고도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좀 편하게 예능을 할 수 있는 환경이긴 하죠. 근데 저도 악역이나 센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1박 2일’과 같이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아요. 그건 프로그램에게도 영화에게도 너무나 피해가 가는 일이니까요.”
알게 모르게 차태현은 조금씩 배우로서 변화를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 2017년과 2018년에 걸쳐 2부작으로 제작되는 김용화 감독의 웹툰 원작 블록버스터 ‘신과 함께’에 출연을 결심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차태현이 연기하는 ‘김자홍’ 역은 그동안 차태현이 연기해온 캐릭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캐릭터지만, ‘신과 함께’라는 영화의 장르는 그동안 차태현이 연기해온 영화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라는 점에서 끌렸다.
“악역을 굉장히 하고 싶기도 해요. 지금 저에게는 월등하게 휴먼 코미디 장르의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오지만 간혹 스릴러 같은 장르도 들어오거든요. 그런데 이런 장르를 싫어해서 출연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은 마음에 드는 역할을 만나지 못했어요. 배우가 아무리 연기변신이 하고 싶다고 해서 마음에 안 드는 역할을 연기할 수는 없거든요.”
“최근에는 스릴러 영화 시나리오를 하나 받았는데 당연히 제가 범인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나오면 범인인 것이 너무 티가 나요. 선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구조적 결함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범인 캐릭터? 그런데 그 시나리오는 제가 끝까지 악역이 아니라는 점이 오히려 신선했어요. 그 때 생각을 해봤죠. 굳이 캐릭터를 통해 이미지를 바꾸기보다 장르만 약간 어두운 영화에 출연해도 조금씩 바꿔갈 수 있겠구나. ‘신과 함께’를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요. 캐릭터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장르가 독특하죠. 배우 차태현에게는 작지만 의미 있는 도전이 될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