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한국 외교가 낭떠러지까지 몰렸다. 대통령이 탄핵으로 직무 정지된 상황에서 정상외교로 풀 수도 없는 최악의 상황이다. 중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보복 조치를 관광 분야를 넘어 경제 분야 전반으로 확대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일본은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을 문제 삼아 통화스와프 협상을 중단했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양대 강국인 중국과 일본이 한꺼번에 강펀치를 날리며 한국 외교가 한발만 헛디디면 벼랑 끝에서 떨어질 수 있는 사상 최악의 위기에 몰린 것이다.더구나 오는 20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 한미관계도 어떻게 변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발 빠르게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에게 손을 내밀며 정상외교를 강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주변국들과의 관계가 이처럼 ‘초(超)불확실성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공조를 이끌어내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소장은 8일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이 같은 외교위기 탈출을 위해 “주변국들과 마찰이 있더라도 올해 우리나라의 외교정책을 일관성 있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며 “일관성이 무너지면 어느 나라도 한국 외교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고 조언했다. 일관성이 무너지면 ‘게도 구럭도 다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진 소장은 “사드는 한미동맹이 유지되는 한 배치돼야 하며 한일 위안부 합의나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도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해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제 정권이 바뀔지 모르는 과도기 상태에서 중국과 일본이 외교공세를 벌이더라도 섣불리 정책을 변경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외교정책의 지속성을 위해 정부와 여야 4당 간에 초당적 외교안보협의체 구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 부원장은 “정부는 현 상황의 엄중함에 대한 인식과 주변국 정세에 대한 정보를 정치권과 긴밀하게 공유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며 “그래야 정권교체 전까지 완충작용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해온 외교정책에 반하는 목소리가 야당에서 불거질 경우 주변국들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주 야당 의원들이 중국을 방문해 한국의 사드 배치 입장이 바뀔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 단적인 사례다.
현재의 국정 공백 상황을 한국 외교의 시스템적 역량을 강화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외교는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부분과 정상외교 등 인물·리더의 역할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서 “리더 역할 부재에 따른 불이익은 불가피하게 감수해야 하겠지만 시스템 부재로 파생되는 문제는 이번에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희영·류호기자 nevermin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