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한국 저비용 항공사의 부정기 항공노선을 중단했던 중국 정부가 국내 화장품을 무더기로 수입 불허 조치를 내리면서 우려했던 중국의 비관세 보복이 현실화하고 있다.
당장 중국 현지 업계에서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 조치를 인정한 중국 정부가 체계적인 보복 수단을 통해 한국 기업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일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이번 화장품 수입 불허 조치처럼 자국의 규정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위생검역(SPS)이나 기술 인증 등 비관세 장벽을 더욱 높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현지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10일 중국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국 질량감독검험검역총국이 지난 3일 발표한 수입 불허 화장품 명단에는 28개 중 19개가 한국산 화장품으로 확인됐다. 이들 제품 가운데는 애경·이아소 등 국내 대기업 제품들도 포함됐다. 수입 거부된 한국산 제품은 크림·에센스·팩·치약·목욕세정제 등 중국에서 인기가 높은 제품이 대다수로 모두 1만1,272㎏이 반품 조처된 것으로 나타났다.
현지의 한 관계자는 “28개 불합격 제품 중 영국산과 태국산 화장품을 빼면 절반이 넘는 19개 제품이 모두 한국산”이라며 “사실상 이번 수입 불허 대상은 한국 제품을 겨냥한 조치라는 인상이 짙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은 이아소의 로션 시리즈2 세트와 영양팩·에센스·영양크림·세안제·자외선차단제 등은 유효기간 등록 증명서가 없다는 이유로 불합격 판정을 내렸다. 일부 샴푸 제품은 다이옥세인 함량이 기준을 초과한 점을 문제 삼았다.
현지 관계자는 “해당 제품들은 이미 지난해 11월 중국 당국의 검역조사에서 허가를 받지 못한 제품들”이라며 “새해 들어 중국 질검총국이 관련 수입 금지 조치를 한 뒤 공개 발표한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이미 수입 불허 판정을 내린 제품이지만 한국 정부 길들이기 차원에서 새해 들어 의도적으로 공개 발표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이미 중국 현지에서는 한국 연예인 출연 제한에서 시작된 금한령(禁韓令)이 거세질 경우 다음 타깃은 한국산 화장품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앞서 관영 환구시보는 7일 “한국 정부는 중국의 사드 여론을 과소평가하고 있는데 한국이 미국 편에 서기로 선택한다면 한국 화장품 때문에 중국은 국익을 희생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중국은 사드 배치와 관련해 새해 들어 보복 수위를 한층 높여가는 형국이다. 새해 들어 춘제(春節·설) 연휴 기간 중국인 관광객(遊客·유커) 수송을 위해 한국 항공사가 신청한 전세기 운항을 불허한 데 이어 한국 기업의 배터리를 탑재한 승용차와 트럭 등을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달 4일에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사드 배치가 늦춰지면 갈등 국면 전환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사실상 한국에 대한 사드 보복 조치가 진행되고 있음을 인정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대목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확산된 금한령 이후 노골적으로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비관세 제재 압박 수위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형식적으로는 자국의 법 규정에 따른 합법적인 조치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한국 기업의 약점을 꼬집어 비관세 장벽으로 큰 타격을 주겠다는 뜻이다.
무역협회 비관세장벽 데이터베이스(DB)에 따르면 중국은 우리 화장품에 대해 인증 4종, 기술장벽(TBT) 3종 등 총 7종의 수입규제를 하고 있다. 중국은 통계가 집계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총 533건의 통관을 거부했는데 이 가운데 화장품을 의미하는 ‘잡제품’의 통관 거부는 68차례로 가공식품(373건) 다음으로 수입 거부가 많았다. 통상 국제무역에서 수입 업체에 과도한 인증서류를 요구하거나 라벨을 문제 삼아 통관을 거부하는 사례를 비관세장벽으로 간주하는데 중국 당국은 제품 내 일부 성분이 기준치를 초과한 것을 문제 삼거나 립스틱과 로션·에센스·마스크팩 등의 경우 인증서류가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입을 거부하고 있다.
중국 당국이 이번에 화장품 수입제한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최근 중국 시장의 한국산 화장품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화장품의 경우 지난해 전체 수출액이 전년보다 43.4% 급증한 41억9,900만달러(잠정치)를 기록했다. 우리 정부는 올해 화장품을 유망 수출 품목으로 간주하고 중국 수출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인데 중국 정부는 의도적으로 사드 여론을 겨냥해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구경우·이지윤기자 hb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