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4차산업혁명 격전지된 바이오] 정밀의료만 136조…시장 급성장에 'ICT 공룡'들도 뛰어들어

<중> 美·中·유럽은 총성없는 전쟁

유전자 가위·줄기세포 등 최소 수조원대 부가가치 창출

"첨단바이오 육성 국가 의무" 각국 정부 투자경쟁 활활

ICT업체 새먹거리 찾아 참전…IBM·구글 의료+ICT 사활

"시장선점 한발 뒤처진 韓, 다국적연구·기업협업 늘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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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의사, 환자 맞춤형 질병예측·건강관리 서비스,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 인공장기, 줄기세포·유전자치료제….’


최근 몇 년간 바이오 산업에 등장한 첨단기술의 면면이다. 아직은 개발 초기 단계지만 하나하나가 상용화에만 성공하면 최소 수조 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미래 인류의 삶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을 기술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AI, 빅데이터, 유전체 분석기술 등을 통해 환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밀의료’는 오는 2025년에 1,126억달러(약 136조원), 인공장기·세포치료제 등이 속한 ‘재생의료’는 2021년에 494억달러(약 60조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2022년 23억달러(약 3조원)의 시장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거대한 잠재력 때문에 전통적인 제약·바이오 기업뿐 아니라 미국·유럽·중국 등 주요국 정부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도 첨단바이오기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주요국, “첨단 바이오 육성은 국가적 의무”=첨단바이오 시장은 기업 간 자율 경쟁을 넘어서 각국 정부 간의 정책·투자경쟁으로 번지고 있다. 각국 정부는 특히 정밀의료를 구현하기 위한 인간 유전체 정보 확보, 산업계와 학계의 협업 활성화를 통한 혁신기술 창출 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이와 관련, 지난 2015년 이후 두 가지 대형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하나가 2015년 발표한 ‘정밀의료 이니셔티브(PMI·Precision Medicine Initiative)’다. 이 계획은 100만명의 유전체 코호트(유전적 특성별 집단)를 구축해 다양한 질병에 대한 개인별 맞춤 치료를 실현한다는 목표로 추진됐으며 매년 2억1,500만달러(약 2,400억원)를 투자한다. 이듬해에는 암 정복을 위해 빅데이터를 활용한 정밀의학 등을 발전시킨다는 계획을 담은 ‘암 탐사(Cancer Moonshot)’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영국은 2012년 일찌감치 ‘10만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10만개의 유전체 정보를 수집하고 암과 희귀병 등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노믹스잉글랜드’라는 국영기업까지 설립했다. 연구자들의 협업을 촉진하자는 취지에서 추진된 ‘정밀의료 혁신센터’는 올해 설립을 완료할 계획이다.

중국도 뒤질세라 2015년 2월 ‘국가정밀의료전략전문가위원회’를 구성해 2030년까지 정밀의료 분야에 600억위안(약 10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프랑스도 지난해 6월 정밀의료 실현을 목표로 향후 5년간 6억7,000만억유로(약 8,500억원)를 투자하는 ‘지노믹 메디신(Genomic Medicine) 2025’를 발표했으며 독일의 경우 퇴행성 신경질환과 당뇨, 심혈관 질환 등 분야에서 ‘독일 유전자 연구네트워크’, ‘의약학 연구 네트워크’, ‘희귀질환 연구연합’ 등 연구역량 극대화에 주력하고 있다.


◇ICT 공룡들 격전지 된 스마트 헬스케어=4차 산업혁명의 꽃으로 불리는 스마트 헬스케어나 정밀의료는 ICT 등과의 접목을 통해 의사보다 정확히 질병 진단을 해주고 환자의 신체적·유전적 특성에 따라 맞춤형 치료방법을 제시하는 미래 의료기술이다. 기존 제약·바이오 기술뿐 아니라 첨단 ICT 확보가 성공의 핵심 열쇠이며 실제로 IBM·구글 등 굴지의 ICT 회사들이 발 빠르게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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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IBM은 AI ‘왓슨’을 통해 이른바 AI 의사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이미 미국 MD 앤더슨 병원 등에서 암 진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진단 정확도가 전문의를 넘어서는 95%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IBM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수조 원을 들여 피텔 등 헬스케어 업체들을 인수해 자신들의 영토를 넓혀가는 중이다. 구글 역시 의료와 AI의 융합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최근 ‘당뇨성 망막병증’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AI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13만장에 이르는 환자 사진을 학습한 결과 의사보다 더 정확하게 질병을 진단한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선진국의 제약사들은 IBM·구글의 성과에 자극받아 이들과의 협업에 발 벗고 나섰다. 일례로 스위스의 노바티스는 구글과 손을 잡고 당뇨병 환자의 혈당치를 수시로 측정할 수 있는 ‘스마트 콘택트렌즈’를 개발 중이다. 화이자는 지난해 12월 IBM 왓슨의 AI 기술을 신약 개발에 적용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중국 기업은 특유의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규모의 경제’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가령 중국 유전체 분석회사 베이징유전체연구소(BGI)는 전세계 유전체 데이터와 우수 인재를 끌어 모으고 공격적인 인수합병 전략으로 이미 규모로는 세계 최대 유전체 회사로 성장했다.

대기업 못지 않는 성과물로 주목 받는 벤처 기업들도 있다. 영국의 벤처기업 옥스퍼드 나노퍼어(Oxford Nanopore)는 정밀 의료의 또 하나의 축인 ‘유전체 분석’ 분야에서 주목 받는데 최근 개발한 개발한 ‘MinION’이라는 시퀀싱 장비는 USB만큼 작고 휴대가 가능해 각광 받고 있다.

◇난치병 정복 위한 첨단바이오기술 경쟁도 치열=그동안 질병을 일으키는 특정 물질을 타깃으로 한 단백질치료제가 주류를 이룬 바이오 의약품도 최근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첨단바이오 기술이 하나둘 나오면서 시장의 격변을 예고하고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은 각종 질병과 관련 있는 DNA만을 잘라 내 교정하는 기술로 각종 유전병·난치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이런 혁신성 때문에 크리스퍼 원천 기술을 지닌 미국 MIT와 UC버클리, 한국의 툴젠 등은 특허권 확보를 위해 각축을 벌이고 있으며 노바티스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독일 바이엘 등 제약사는 크리스퍼에 앞다퉈 투자를 하고 있다. 이른바 ‘100세 시대’를 열 주역 중 하나인 인공 장기 기술 경쟁도 뜨겁다. 미국의 ‘오가노보(Organovo)’는 인공 장기 분야 선두 주자인데 3D 프린터를 이용해서 이미 인공 간 조직과 신장 조직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세계적인 의료기기업체 메드트로닉(Medtronic)은 지난해 10월 당뇨병 환자에게 인슐린을 자동으로 투여하는 의료기기를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허가 받았는데 이 기기는 사실상 ‘인공 췌장’ 역할을 하는 것이어서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세포치료, 유전자치료, 면역치료 등 삼두마차도 차세대 바이오기술로 각광 받고 있다. 이들 치료제들은 아직 상업화된 것이 많지 않지만 향후 5년간 연평균 23~24%의 고속 성장이 예견되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도 투자를 늘리는 추세인데 화이자는 최근 유전자 치료제 업체 ‘뱀부’를 인수했고 면역항암제 시장은 세계 10위권 제약사는 모두 뛰어든 상태다.

윤수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도 미래 의료 패러다임의 변화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면서 “연구개발 투자나 인구 규모 등 측면에서 선진국보다 뒤지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국적 연구 참여나 글로벌 기업과의 협업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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