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2일 미국 백악관 기자실에 조지 부시 대통령이 예고 없이 나타났다. 양옆에는 토니 스노 대변인과 제럴드 포드 대통령 시절의 론 네슨,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의 제임스 브래디, 빌 클린턴 대통령 대변인을 역임한 디디 마이어스 등 전·현직 대변인 6명이 함께했다. 이들이 한꺼번에 등장한 것은 그 날이 백악관 서관(West Wing)에 있는 기자실이 개보수 작업에 들어가는 특별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백악관 기자실은 쥐가 나올 정도로 낡고 비좁았다. 바닥도 나무여서 걸을 때마다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 특히 냉방시설이 오래돼 TV 카메라가 조명을 비추면 한증막이 되곤 했다. 그로부터 1년 남짓인 이듬해 7월11일. 800만달러를 들여 고친 백악관 기자실 오픈 기념식이 열렸다. 이전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라 할 만했다. 브리핑룸 바닥은 콘크리트에 고급 카펫으로 덮였고 49개의 좌석은 극장식 고급 가죽 의자로 교체됐다. 연단 뒤에는 커다란 TV와 백악관 문양, 성조기 등이 파란 벽면과 어우러져 배치돼 있었다.
이렇게 재단장된 지 10년이 안 돼 백악관 기자실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기자실을 없애는 방안을 검토 중이란다. 이게 현실화되면 1969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실내 수영장을 허물고 기자실을 만든 지 48년 만이다. 트럼프는 기자실이 좁아서라는 핑계를 대지만 대선 과정에서 적대적이었던 기존 언론에 대한 반감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위터 정치’에 재미 들린 트럼프의 행보를 보면 이런 해석이 맞지 싶다.
백악관 출입기자단이 반대 성명을 내는 등 언론 반발이 거세 결론은 예측불가다. 하지만 폐쇄 여부를 떠나 발상 자체가 이해하기 힘들다. 백악관의 진짜 주인은 미국 국민이고 기자들은 국민이 있어야 할 자리에 대신 있는 것이다. 자기는 잠시 들렀다가는 객(客)일 뿐인데 트럼프가 그 점까지 감안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노무현 대통령 때의 기자실 파동이 겹쳐지는 느낌은 왜일까. /임석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