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기업의 신용위험평가가 한층 깐깐해진다. 이에 따라 워크아웃·법정관리에 들어가야 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등 구조조정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또 금융당국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불거진 합병 비율 논란과 관련해 기업가치 기준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17일 금융위원회는 올 상반기 채권은행의 신용위험평가 모델을 점검한 뒤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채권은행은 매년 거래 기업을 대상으로 정기 신용위험평가를 통해 A∼D등급을 매긴다. A등급은 정상기업, B등급은 정상기업이지만 일시적으로 유동성 부족을 겪는 기업이다. C·D등급은 각각 워크아웃과 법정관리에 들어가야 하는 ‘퇴출 대상’이다. 하지만 채권은행의 온정적인 신용위험평가로 진작 퇴출당했어야 할 기업이 정상기업으로 연명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구조조정 대상 채권의 공정가치를 평가하는 독립적 평가기관도 올 상반기부터 운영된다. 은행의 구조조정 채권은 2015년 30조원, 지난해 16조원에 이른다. 채권은행이 평가기관이 산정한 공정가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은행은 스스로 평가한 채권가격과 공정가치의 차액만큼을 충당금으로 쌓아야 한다.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들은 시중은행이 채권매각 대상 구조조정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끊지 않도록 보증을 서주기로 했다. 구조조정 기업이 당좌대출·할인어음·무역금융 등 기업상거래 활동과 연관된 한도성 여신은 계속해서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부실기업 인수 시장 활성화를 위해 하반기 기업구조조정 펀드가 조성된다.
금융위는 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논란과 관련해 합병과 유상증자 시 적용되는 기업가치 평가 기준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따르면 상장사의 합병기준 가격(주가)은 일정 기간(1개월·1주일) 종가의 평균을 구한 뒤 자율적으로 30%(계열사 합병은 10%)범위에서 할인하거나 할증할 수 있다. 기업이 시행령을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해 합병비율을 정하는 것이 가능한 구조라는 게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들과 금융투자업계의 지적이다.
이에 따라 금융위는 기업 합병과 유상증자 등에 적용되는 가치평가 기준의 적정성과 합리성을 전반적으로 점검하기 위해 2·4분기 중 민간 연구기관에 연구 용역을 맡기기로 했다. 기준 변경 여부는 연구 용역 결과를 확인한 뒤 최종적으로 판단할 방침이다.
삼성그룹이 지난 2015년 삼성물산 주식 가치를 제일모직의 35% 수준으로 낮게 평가(합병비율 1대0.35)하면서 결과적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유리한 결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합병비율이 1대0.46이 적정한 것으로 판단했다. 김태현 금융위 자본시장국장은 “대주주의 의도에 따라 기업 합병비율이 달라지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 만큼 가치평가 기준을 검토해보고 더 나은 대안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며 “현행 기준이 낫다고 결론 나면 규정을 바꾸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훈·지민구기자 ksh25t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