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후 잇따라 통합의 메시지를 설파하고 있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8일 광주와 대구를 방문했다. 하루 동안 여야의 텃밭을 아우르는 일정 속에 영호남 연합정권을 세우겠다는 야심 찬 구상을 담아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오전8시50분께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에 도착했다. 반 전 총장은 방명록에 ‘민주주의와 인권 보호를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하신 민주 영령들께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더 발전되고 공정한 사회 건설에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일해나갈 것을 약속드립니다’라고 적은 후 경건한 표정으로 묘지를 참배했다.
그는 참배 후 기자들과 만나서는 “광주와 호남은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정착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시발점이 되는 곳으로 민주주의의 원산이라고 할 수 있다”며 “우리가 향유하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값진 희생을 통해 이룩한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켜나가야겠다”고 강조했다. 전날 봉하마을을 찾으며 외연 확장에 나선 반 전 총장이 민주주의의 싹이 움튼 곳에서 호남 공략의 일성을 던진 것이다.
반 전 총장은 이어 조선대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질의응답을 곁들인 강연을 진행한 후 전남 여수의 수산시장으로 달려가 화재 현장을 점검했다.
호남 방문을 마친 반 전 총장은 곧바로 보수 텃밭인 대구로 넘어갔다. 반 전 총장은 먼저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역시 화재로 피해를 입은 상인들을 위로했다. 특히 서문시장엔 수백명의 시민이 운집해 마치 기다리던 보수의 영웅이 귀환이라도 한 듯 뜨겁게 반 전 총장을 맞았다. 이어 저녁에는 젊은 기업가의 산실인 사단법인 한국청년회의소(JC) 회원 40여명과 삼겹살을 구우며 청년세대의 애로와 고민거리를 청취했다.
이날 반 전 총장의 동서를 아우른 발걸음은 향후 그가 내디딜 정치 행보의 예고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반 전 총장이 대권 도전의 꿈을 본격적으로 펼칠 울타리가 사실상 바른정당과 국민의당 두 곳으로 압축된 가운데 어떤 정당을 선택하든 나머지 한 곳과의 연대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치 지형상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이 제3지대에서 손을 맞잡지 않으면 ‘문재인 대세론’에 균열을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바른정당의 구심점인 김무성 의원이 반 전 총장 영입에 공을 들이는 한편으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와 물밑 접촉을 이어가고 있는 것도 개헌을 고리로 한 합종연횡을 노린 포석이라는 해석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메시지와 행보 등에서 애매한 스탠스를 이어가고 있는 반 전 총장이 서둘러 입장을 정리하지 않으면 영남과 호남, 보수와 진보 모두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광주·여수·대구=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