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시간 장고 끝에 나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에는 ‘아직은 범죄 구성요건을 입증하기에 부족하다’는 법원 판단이 깊게 배어 있다. 특검이 제시한 증거와 수사 자료들만 가지고는 정식 재판에 가서 유죄를 끌어내기가 어렵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조의연(51·사법연수원 24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8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한 뒤 장시간에 걸친 검토 끝에 특검이 이 부회장에 대해 청구한 영장을 기각했다. 조 판사는 기각 사유로 뇌물 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소명 정도, 각종 지원 경위에 관한 구체적 사실관계와 법률적 다툼의 여지 등을 꼽았다. 또 현재까지 이뤄진 수사 내용과 진행 경과 등에 비춰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보다 피의자 혐의가 얼마나 입증됐는지 등 법리를 철저히 따지는 조 판사의 성향이 기각 사유에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평가했다. 영장심사 후 이 부회장 대기 장소로 제시한 특검 사무실을 형사소송법상 유치 장소로 보기 어렵고 다른 피의자들과 형평성도 맞지 않는다며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하도록 결정한 점도 그의 성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 판사는 이 부회장 혐의에 대해 뇌물죄를 인정하려면 ‘대가’와 ‘부정한 청탁’이라는 필수 요소가 성립돼야 하는데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과 특검의 주장만으로는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모두 소명되기에는 부족하다고 봤다. 현재 특검의 소명 정도로는 법률적 평가를 둘러싸고 다툼이 생길 수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기각 사유에는 특검의 앞으로 수사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조 판사는 “관련자 조사를 포함해 현재까지 이뤄진 수사 내용 등을 볼 때 구속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특검의 수사 내용이 아직은 불충분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현 단계에서 관련자 조사 등 구체적 사실관계에 대해 수사를 더 진행해 최종 법원 판결에서 유죄를 받아낼 수 있는 확률을 높여야 한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영장기각 사유에서 조 판사의 고심 흔적이 곳곳에 묻어나 있다고 봤다. 일단 이번 사유의 내용이 기존 일반적인 사유보다 두 배 이상 길다. 이전 기각 사유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심사에서는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내용과 경과, 주요 범죄 혐의에 대해 법리상 다툼의 여지가 있어 현 단계에서는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만 적시했다. 영장을 발부했던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에 대해서도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간략히 나타냈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번 사건이 국민적 관심이 높고 결과에 대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되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설명하려다 보니 사유가 길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