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김형철의 철학경영] 시키는 대로 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연세대 철학과 교수

<41> 불법적 명령과 절대복종

윗사람 부당한 지시하면

납득할수 있을때까지 확인

대항할 대안 여부도 살펴

무비판적으로 따라선 안돼





미국 군대에서 있었던 일이다. 테러리스트에 의해 인질로 잡혀 있는 미국대사와 그 가족을 구출하라는 명령을 받고 출동하는 부대 이야기다. 헬리콥터를 타고 현지에 출동해보니 상황은 최악이다. 대사관은 성난 폭도들에 의해 포위된 채 화염병이 투척되고 있다. 저격수들은 아군에게 총을 쏘기 시작한다. 병사들이 총을 맞고 쓰러지기 시작하자 지휘관은 군중을 향해 발포를 명령한다. 부하들은 테러범만을 선별사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고한다. 그러자 그 지휘관은 단호하게 말한다. “싹 다 쓸어버려!” 이성을 잃은 게 분명한 명령을 수행한 결과는 매우 참혹했다. 노약자와 부녀자들을 포함한 수백명의 군중이 그 자리에서 참살된다. 내가 그 부하였다면 상관의 불법적인 명령을 이행했을까. 아무리 상황이 급박하고 열악하다고 했더라도 아마도 차선책은 일단 작전상 후퇴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철수하고 다시 다른 기회에 구출작전을 펼치는 거다. 영화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교전수칙)’에 나오는 장면이다.


불법적 명령으로 작전을 수행한 그 지휘관은 훗날 군사재판에 넘겨진다. 당연히 유죄판결이 내려진다. 문제는 지휘관의 불법적 명령을 이행한 그 부하들이다. 그 부하들은 무죄일까, 유죄일까. 전시에 상관명령에 불복종하면 총살감이다. 하극상이 군대와 같은 조직에서는 최악의 사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관이 내리는 불법적인 지시까지 끝까지 복종해서는 안 된다. 그 부하가 어디까지 상관의 불법적 명령에 협조했느냐는 유무죄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일말의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끝까지 저항했는지 말이다. 지휘관의 명령에 대항할 대안이 존재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만약 군사법정에서 증언을 조작한다면 그것은 더더욱 별도의 처벌이 추가될 수 있다. 어쨌거나 그 부하들로서는 매우 당혹스럽고 곤란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래서 리더 한 명의 판단이 엄청나게 중요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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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하는 말을 자식이 거역한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다. 특히 효를 강조하는 유교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효란 무엇인가. 논어는 ‘부모의 말에 절대복종하는 것이 효’라고 규정한다. 절대복종이라면 예외 없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에 부모가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행동을 할 것을 명령한다면 효심이 깊은 자식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도둑질을 하라고 시키면 해야 되고 사람을 죽이라면 죽이는 것이 효를 다하는 길일까. 참으로 어려운 문제에 공자는 이렇게 답한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부모님이 내리면 즉각적으로 행동에 옮기지 말라. 그리고는 실행하기 전에 부모의 뜻을 물어봐라. 언제까지 물어보느냐면 자신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부모의 의사를 질문하면서 확인해야 한다. 진정한 효는 부모가 시키는 거라면 무조건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못된 일을 하지 않도록 간하고 또 간해야 한다고 답한다.

유교적 전통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윗사람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다. 효사상에 따르면 자식은 부모님의 말씀에 절대복종해야 한다. 찬물에도 순서가 있다는 장유유서(長幼有序)도 우리의 행동을 엄격히 지배한다. 윗사람에게는 반드시 존댓말을 써야 한다는 것도 억압적으로 작동하는 기제다. 아랫사람에게는 반드시 반말을 써야 한다면 그것은 이중적으로 억압적이다. 이러한 문화적 구조 속에서 윗사람이 지시하는 것이라면 무조건 이행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여기에다 혼자만 튀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마저 겹치면 우리는 마치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마피아 조직에 발을 담근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검찰·군대·경찰과 같은 조직이 마피화하는 것은 이러한 논리에 따른 것이다.

그것이 상사의 지시든 선생님의 가르침이든 부모님의 말씀이든 무조건 따르지는 말라. 자신이 잘못 알아들었을 수도 있지 않는가. 윗사람이 잘못 판단할 수도 있지 않는가. 시키는 대로 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물어보고 또 물어봐라. 그렇게 하는 것이 윗사람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다.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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