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백악관 ‘조언 편지’



1989년 1월19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 책상 위에 편지 한 통을 남긴다. 수신인은 바로 다음날 미국 41대 대통령에 취임하는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레이건은 편지에서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이지만 그에 못지않은 보람도 느낄 수 있다”면서 “바보들(Turkeys)에게 굴복하지 말라”는 조언을 남겼다. 부시는 취임식 후 집무실에 올라와 이 편지를 읽는 것으로 대통령 업무를 시작했다.


‘위대한 소통자(Great Communicator)’로 평가받는 레이건이 남긴 백악관의 아름다운 전통 가운데 하나다. 생전에 1만통이 넘는 편지를 쓴 것으로 알려진 레이건이 부시에게 직접 쓴 손편지를 남기면서 이후 전직 대통령이 새 대통령의 행운을 비는 ‘조언 편지’는 관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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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부시가 백악관을 떠나면서 후임자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남긴 편지는 패자의 품격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며 자신의 경제 실정을 매섭게 물고 늘어진 젊디젊은 클린턴이었지만 그는 “이제 당신의 성공이 우리의 성공”이라며 클린턴의 성공을 기원했다. 그는 “힘이 들어도 비평가들이 당신을 좌절시키거나 진로에서 벗어나도록 두지 말라”는 조언도 건넸다. 이런 내용이 새삼 재조명된 것은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유세를 다니면서 “내가 이기면 대선 결과를 수용하고, 지면 그때 가서 말하겠다”며 선거 불복 가능성을 시사한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 탓이다.

그랬던 트럼프 대통령도 22일 백악관에서 열린 고위 참모진 선서식에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남긴 편지를 들어 보이며 깊은 감사를 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남긴 아름다운 편지를 발견했다”며 “이 편지를 소중히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미국도 보통 8년 주기로 민주당과 공화당 정권을 오갔지만 정파에 관계없이 이런 조언 편지를 남긴다는 게 부러울 따름이다. /이용택 논설위원

이용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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