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트럼프...사실같은 사실인듯 사실아닌 말 말 말

조지 오웰 불러내...1984 아닌 2017 버전

지난 20일 닻을 올린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비판세력과 언론의 진실 검증 요구에 맞서 새로운 개념을 고안했다. 바로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이다. 세상에 사실은 여러 개일 수 있으며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취임식날 역대 최고의 인파가 몰렸다고 발표한 게 거짓으로 들통나 언론에 추궁당하자 켈리온 콘웨이 백악관 고문이 대안적 사실이라고 둘러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 지도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한 자리에서 “지난 대선에 불법 이민자들의 300~500만 표의 부정투표가 없었다면 내가 득표율에서도 힐러리를 이겼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언론이 그 근거를 묻자 백악관측은 “트럼프가 불법 투표가 있었다는 합리적 자료와 과학적 사실을 믿고 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그 객관적 수치나 근거는 내놓지 않았다.




백악관 선임고문 켈리온 콘웨이백악관 선임고문 켈리온 콘웨이


대안적 사실이란 신조어가 빈축을 사면서 미국에서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때아닌 인기를 누리고 있다. 24일(현지시간) 미 CNN과 AP통신에 따르면 1984는 이날 오전 현재 아마존 책 판매 집계에서 6위를 기록했다. 전체주의를 고발한 명저인 1984에는 권력을 장악한 ‘빅 브라더’가 개개 집에 쌍방향 스크린을 설치해 사회 구성원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한편 사회 사건과 현상을 왜곡, 조작해 그때 그때 권력에 맞는 사실만을 믿게한다. 소설 속 빅브라더가 구성원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이 ‘이중사고(doublethink)’다. 기록과 인간 기억의 조작을 통해 두개의 상반된 내용을 받아들이게 하거나, 과거와 현재의 사실을 권력에 입맛에 맞게 그때 그때 바꿔 나간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생뚱맞게 들고 나온 ‘대안적 사실’에 1984의 이중사고가 오버랩된다.

오웰이 1948년 이 소설을 출간할 당시 염두에 뒀던 것은 전체주의로 인간성이 말살되고 있는 소련 공산주의였다. 당시 히틀러, 스탈린 등 전체주의 지도자에 맞서 자유 진영 세계를 대표했던 미국이 1984의 주인공이 될 줄 오웰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조지 오웰식의 이중사고는 한 개인 내면에 존재하는 서로 모순되고 상반되는 신념을 일컫기도 한다. 출세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현실 사회에서 성공을 욕망하고, 외모 지상주의를 비판하면서도 끝없이 외모에 신경을 쓰는 등등. 1984에서 인간은 전혀 모순되는 두 가지 신념과 행동을 마치 하나인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신봉한다.


대선 후보때와 달리 취임 후면 달라질 것으로 기대했던 트럼프의 모순적 언행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대안적 사실이란 조어를 만든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환경주의자라고 공언하면서 대통령이 되고 나서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를 완화하고, 대선 시절 여성을 희롱한 녹음테이프가 공개됐는데도 자신은 누구보다 여성을 존중한다고 말하고, 다른 나라의 이익을 존중한다면서 이라크 전쟁 후에 미국이 이라크 유전을 차지했어야 한다고 밝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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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12월 초 트럼프 당선자의 대리인 역할을 했던 스코티 넬 휴즈는 한 언론에 나와 “불행히도 사실이란 것은 더 이상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거짓을 얘기했다기보다 트럼프 자신이 특정한 시점에 경험했던 내용을 감정을 섞어, 또 함축적인 암시를 포함시켜 말한 것 뿐”이라고 변명했다.

부동산 사업가로 평생을 살아온 트럼프에게는 절대적 사실은 없으며 딜(거래)만이 있을지 모른다. 자유, 인권, 진실, 민주 등 같은 추상적 가치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세계화에 소외됐던 저소득 백인층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들에게 일자리와 소득을 늘려주는게 그의 지상 과제다. 취임 직후부터 애플 등 국내 기업은 물론 현대차 등 글로벌 기업을 압박해 미국에 공장을 짓고 일자리를 만들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그에게 지구는 진실과 거짓의 명확한 구분이 없는 ’포스트 트루스(post truth)’ 세상이다. 일자리를 늘리고 미국만 먼저 잘 살면 된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잘 먹혀든다고 판단한 듯하다. 트럼프의 등장이 ‘말’과 ‘정보’가 불신받는 어지러운 사회의 도래를 상징하는 것 같아 뒷맛이 씁쓸하다.

이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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