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단독]달갑지 않은 ‘신흥국 안전자산’…원화가치, 엔화 보다 더 올랐다

올들어 원화 절상폭 3.5%

주요 20개국 통화중 두번째

수출회복세에 '찬물' 우려





글로벌 자금이 ‘신흥국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원화로 몰리고 있다. 올 들어 원화가치는 대표적 안전자산인 일본 엔화보다 더 많이 올랐다. 수출에 단비가 될 것으로 예상했던 ‘고환율’ 전망이 연초부터 틀어지는 모습이다. 더욱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신행정부가 불확실성을 더하는 정책을 잇따라 내놓으며 달러화 방향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어 달갑지 않은 글로벌 자금의 원화 쏠림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6일 서울경제신문이 올 들어 지난 25일까지 선진국과 신흥국 주요 20개 통화의 달러 대비 가치 변화를 분석한 결과 원화가치는 연초 대비 3.5%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가치가 5.3% 상승한 호주달러에 이은 2위다. 원·달러 환율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연초 1,208원에 장을 열었다. 미국의 경기지표 호조로 기준금리 인상 기대감이 높아지는 상황이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불확실성이 계속 불거지면서 원·달러 환율은 오히려 1,159원20전(26일 종가 기준)까지 밀려났다.

이 같은 원화 가격 상승(환율하락)폭은 대표적 안전자산인 엔화(2.5%)나 유로화(1.9%)보다도 컸다. 외환당국은 최근의 원고(高) 현상과 관련해 원화가 신흥국 안전자산으로 자리매김한 것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외환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주요 선진국보다 이자율이 높은데다 다른 신흥국에 비해 경제 기초여건도 탄탄하고 쉽게 들어갔다 쉽게 빠질 수 있게 시장도 개방돼 있다”며 “이 때문에 달러화가 약세면 원화가 다른 통화보다 더 강세를 보이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원고가 살아나고 있는 수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지난해 4·4분기 수출이 회복세를 보이며 기업 실적도 좋아졌는데 환율이 올랐던 영향이 분명히 작용했다”며 “올 1·4분기 평균 환율이 전 분기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어서 기업 실적이나 수출 여건 개선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2715A02 원달러환율추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라” 당국, 개입 내역 공개 카드 만지작

전문가들 “美 금리인상 가시화…원고 장기간 이어지진 않을 것”




원화 절상폭이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수출 경쟁국보다 높은 것도 문제다. 올 들어 원화가치가 3.5% 오르는 기간 동안 우리 수출의 대표적 경쟁국인 대만달러 가치는 3.3% 상승하는 데 그쳤다. 다른 신흥국 통화도 원화보다 값이 덜 올랐다. 인도네시아 루피화와 말레이시아 링깃화도 같은 기간 1.1%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인도 루피아화(-0.3%), 필리핀 페소화(-0.5%)는 되레 값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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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시장에서는 최근 당국의 미세조정(스무딩오퍼레이션) 실종이 원고(高)를 심화시키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박성우 NH선물 연구원은 “최근 원화가 큰 폭의 변동성을 보이는 것도 모자라 다른 통화보다 가격이 크게 올랐음에도 당국의 스무딩오퍼레이션은 눈에 띄지 않는다”며 “당국 입장에서는 환율조작국 지정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오른 판국에 (원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끌어내리는) 달러화 매도 개입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미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는 의사를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최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도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려면 기준을 바꿔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도 함께 지정될 수 있다”며 “본보기로 중국보다 먼저 지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미국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기 4년 전인 1988년 한국과 대만을 먼저 지정한 바 있다.

미 재무부가 우리나라를 심층분석대상국(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경우 1년의 시차를 두고 대통령 직권으로 관세 인상이나 수입제한 등 무역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심층분석대상국 지정요건 세 가지 중 대미 무역흑자 200억달러 이상, 경상흑자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상 등 두 가지 요건에 걸려 있다. 4월로 예정된 미 재무부의 환율보고서 발표도 외환당국의 손발을 묶는 요인이다. 이번 미 재무부의 환율보고서는 우리나라의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가늠자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대비해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는 방안까지 만지작거리는 외환당국 입장에서는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원고 현상이 장기간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다시 가시화하고 1조달러 규모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공언한 트럼프 행정부의 재정정책이 구체화하면 달러화가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다만 환율 진폭을 줄이는 당국의 손발이 묶인 이상 변동성은 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원화가치가 이례적으로 높아졌지만 강달러 추세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해 몇 차례 더 인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기대감이 커지면 원·달러 환율은 다시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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