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환율조작국 지정 등 직접적 제재를 하지 않아도 간접적 경로만으로 우리 경제에 막대한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분석했다.
1일 기자간담회에서 이시욱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원화와 위안화가 각각 10% 절상되면서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낮아지면 우리 경제성장률이 오는 2019년까지 매년 0.4~0.7%포인트 깎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올해 경제성장률이 0.41%포인트, 내년은 0.67%포인트, 2019년은 0.43%포인트 낮아질 것이라는 진단이다. 현재 달러당 1,150원대에서 거래되는 원·달러 환율이 1,030원 정도로 절상될 경우를 가정한 수치다. KDI는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을 2.4%로 보는데 현실화하면 1%대로 내려갈 수 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2.7%였다. KDI는 수출과 경상수지, 물가 상승률 등의 전반이 하방압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날 KDI는 미국의 보호무역 조치로 우리 수출의 중국 의존도가 더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으로의 수출이 타격을 받으면서 일종의 ‘풍선효과’로 중국행 수출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총수출액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5%로 가장 높다. 이 교수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에 따른 중국의 경제보복 등에 대한 대응이 미흡한 점이 있는데 대중국 수출의존도가 더 커질 경우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무역전쟁이 발발해 미국 경제가 경착륙할 가능성도 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KDI는 미국이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에 대비해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KDI는 “대부분의 주요 선진국들은 공개하고 있는데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하게 대응할 수 있다”며 “(비공개로) 유지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외환 당국은 환시 개입 내역 공개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의 전제조건으로 추진했지만 최근 TPP 동력이 빠지면서 공개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당국은 지난 1962년 서울 외환시장이 설립된 이래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날 KDI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조치에 대한 다양한 배경도 설명했다. 일단 미국 공화당이 친자유무역주의 성향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의외라는 지적에 “꼭 그렇게만 볼 수 없다”고 평가했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정부부터 친자유무역 정책을 폈을 뿐 그 이전에는 수차례 관세 인상 조치를 내놓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보호무역주의의 나폴레옹’이라 불린 25대(1897~1901년) 미국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공화당)와 비슷하다”고 진단했다.
KDI는 트럼프 대통령이 보호무역주의를 밀어붙이는 배경으로 일종의 희생양이 필요한 점을 짚었다. 이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층은 수십 년간 실질소득이 정체되거나 감소한 고졸 이하의 저숙련 백인 노동자”라며 “정치적 지지기반을 위한 희생양이 필요해 중국 등 통상정책에 집착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