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주부 아빠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어린이 TV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의 작가 모 윌리엄스. 뉴욕타임스가 ‘21세기 가장 크고 새로운 재능을 가진 인물’로 꼽고 ‘에미상’을 다섯 번이나 거머쥐었던 그였지만 지난 2003년 돌연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후 ‘주부’로 전업했다. 일을 집에서 하고 싶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2살 된 딸 ‘트릭시’와 함께 지내는 것이 너무 재미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고백이다. “내 책에 나오는 얘기보다 딸과의 대화가 훨씬 더 흥미롭다”던 그는 집단지성 ‘위키피디아’에서 꼽은 10대 ‘주부 아빠(Stay at home dad·SAHD)’에 이름을 올렸다.


주부 되기를 선언한 남성이 윌리엄스만은 아니다. 전설적인 그룹 ‘비틀스’의 존 레넌, 201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에릭 베치그, 미국 프로야구 선수인 빌리 애슐리 등도 대열에 동참했다. 2014년에는 미국에서 남성 전업주부가 200만명을 넘어서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일본은 아예 정부가 나서서 남성의 가사노동 참여를 권장했다. ‘육아하지 않는 남자는 아버지로 부르지 않는다’는 다소 자극적 문구의 1999년 일본 후생성 공익광고가 대표적. 광고가 예상 밖 히트를 치며 미리 찍었던 포스터 10만장이 매진됐고 추가 인쇄에 들어가기도 했다. 덕분에 당시 17분이던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2015년 62분까지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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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주부=여성’이라는 공식이 빠르게 깨지고 있다. 지난해 비경제활동 인구 중 집에서 육아와 살림에 전념하는 남성 인구가 지난해 16만1,000명으로 7년 만에 가장 많았다고 한다. 남편보다 돈을 더 잘 버는 고수입 전문직 여성이 많아지고 연상연하 커플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한국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하루 평균 47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말로만 이뤄진 양성평등. 수백년간 이어진 가부장적 권위주의의 뿌리는 이토록 여전히 깊고 두텁다. /송영규 논설위원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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