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상승률이 2% 벽을 뚫었다. 성장률은 떨어지는데 물가만 오르면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공포가 커지고 있다. 피부로 느끼는 현재 상황은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다는 평가도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침체(stagnation)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보통 경기가 좋지 않으면 물가도 낮아지고 활황이면 물가도 높아진다. 정부는 경기와 물가가 동시에 가라앉으면 재정을 풀고 금리를 내리는 부양책을 쓰고 반대로 고공행진을 벌이면 긴축정책으로 대응하면 된다. 하지만 스태그플레이션하에서는 돈을 풀면 물가가 더 올라가고 그렇다고 긴축을 하자니 경기 침체의 골은 더욱 깊어지는 딜레마에 빠지는 형국이다.
2일 통계청이 발표한 1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물가상승률(전년 대비)은 2.0%로 지난 2012년 10월(2.1%) 이후 51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지난해 12월의 1.3%에서 0.7%포인트나 올랐다. 체감물가인 생활물가지수도 2.4% 상승해 4년11개월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채소·과일·해산물 등만 추려내 장바구니물가지수로 불리는 신선식품은 12%나 올라 지난해 9월 이후 5개월 연속 두 자릿수 상승률을 나타냈다.
반면 경기는 좋지 않다. 지난해 3·4분기 경제성장률은 0.6%(전분기 대비), 4·4분기에는 0.4%를 기록했다. 가계 실질소득(전국 2인 이상 가구)은 지난해 3·4분기까지 5분기 연속 뒷걸음질(전년 대비)쳤다. 특히 소득 하위 20%(1분위)의 지난해 3·4분기 현재 월평균 소득은 141만7,000원으로 5.9% 감소했고 2분위도 290만4,000원으로 0.9% 줄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체감으로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다”며 “사전적 의미로는 경제성장률이 2분기 연속 감소(전 분기 대비)하고 물가상승률이 2% 이상을 기록할 때를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보는데 배제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4면으로 계속
성장찔끔·소득 뒷걸음치는데 ‘물가쇼크’…소비침체 가속 우려
당근 125%·무 113% 올라 ‘장바구니 물가’는 고공행진
휘발유 값 리터당 2,000원 육박…하수도요금 등 공공요금도 들썩
유가·환율이 물가 더 밀어 올려…앞으로도 2% 안팎 지속 전망
1월 소비자물가를 보면 식품은 물론 좀처럼 씀씀이를 줄이기가 쉽지 않은 기름값·학원비·주거비 등이 급등했다.
우선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의 여파로 계란값이 61.9%나 급등했다. 이는 1월 전체 물가상승률을 0.14%포인트 끌어올렸다. 당근이 125.3% 올랐고 무 113%, 배추는 78.8%나 뛰었다. 이 밖에도 귤 39.3%, 토마토 37%, 한우는 4.7% 올랐다. 서민들이 즐겨 먹는 김밥과 식당에서 파는 소주(외식 소주)가 7.6%씩 올랐고 과자와 빵값도 각각 6.7%, 5.2% 인상됐다.
그동안 잠잠하던 기름값도 반등했다. 석유류 가격은 지난해보다 8.4% 급등해 2011년 12월(11%) 이후 5년1개월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이는 1월 전체 소비자물가를 0.36%포인트 끌어올렸다. 석유류는 최근 2~3년간 기록적인 저유가로 가격이 급락했지만 최근 다시 오르고 있다. 구체적으로 휘발유가 8.9%, 경유가 12.2% 올랐다. 1일 현재 서울지역 주유소 휘발유 평균 가격은 ℓ당 1,616원으로 지난해 최저가(3월5일 1,416원)보다 14.1% 뛰었다. 서울 중구는 1,960원으로 2,000원에 육박했다. 경유도 1,406원으로 지난해 최저가에 비해 18.5% 올랐다. 최대 70ℓ가 들어가는 쏘나타 한 대에 기름(휘발유)을 가득 넣는 데 지난해에는 10만원이 채 들지 않았지만(9만9,000원) 지금은 11만3,000원을 지불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학원비도 많이 올랐다. 고등학생 학원비는 2.8% 인상돼 전체 물가상승률(2%)을 웃돌았고 음악학원비는 3.9% 올라 2013년 3월(4.1%) 이후 약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술학원비 역시 2.9% 올라 전체 물가상승률보다 높았으며 취업학원비도 2.3% 인상돼 2015년 11월(2.6%) 이후 1년2개월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주거비용은 아파트관리비(공동주택관리비)가 4.2% 올라 지난해 6월(4.2%) 이후 7개월래 가장 높았다. 하수도요금은 11.8%나 뛰었고 상수도료도 1.9% 올랐다. 전세는 2.9% 상승했고 월세 오름세도 이어졌다(0.3%). 이 밖에 외래진료비가 2.6% 올랐고 연초 실손보험료가 뛰며 보험서비스료도 19.4%나 인상됐다.
문제는 이미 절대수준이 높아진 물가가 앞으로도 2%대 내외로 이전보다 크게 오를 것이라는 점이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경제현안점검회의를 열어 “물가가 당분간 1% 후반 수준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국제유가와 환율 상승에 따른 에너지 가격 오름세가 전체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실제 지난해 1, 2월 국제유가는 배럴당 20달러대까지 곤두박질쳤고 5월 말까지도 50달러를 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유가는 배럴당 50달러를 넘어섰다. 국제연구기관에 따르면 앞으로 국제유가가 50달러대를 유지할 것으로 보이므로 적어도 5월까지는 유가 기저효과로 소비자물가 오름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정부는 배추와 당근·무의 봄철 재배면적이 각각 16%, 10.8%, 3% 증가할 것으로 보여 공급이 늘어날 수 있고 계란 수입물량도 확대하고 있어 농축산물 가격은 점차 안정될 것으로 기대했다.
주원 실장은 “물가가 오르면 소비자들이 심리위축 등으로 지갑을 닫을 수밖에 없어 소비침체를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올해 소비가 금융위기 후 최악을 기록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은 올해 민간소비 증감률이 1.7%에 머물며 지난해보다 0.7%포인트 후퇴할 것으로 봤다. 2014년과 같은 수치이며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0.2%) 이후 최저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8%, LG경제연구원과 정부는 2%로 내다봤다./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