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SK증권에 대한 3자 매각 작업에 착수함에 따라 최태원(사진) SK 회장의 ‘선택과 집중’ 전략에 본격적으로 시동이 걸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실 SK 내부에 불어닥친 변화의 바람은 지난해부터 감지됐다. 연말 사장단 인사에서 전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50대로 물갈이하는 세대교체를 단행했고 이어 조직개편으로 그룹 컨트롤타워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임직원도 20%가량 줄였다.
재계에서는 “SK가 추진하는 변화의 속도가 숨 가쁠 정도”라며 놀라워한다.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는 것은 어느 대기업이나 마찬가지지만 SK는 실행속도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돌연사’한다”며 끊임없이 쇄신을 주문해왔다.
SK의 한 관계자는 “최근 SK의 행보가 막대한 투자를 앞세운 확장 일변도의 ‘공격경영’이었다면 SK증권 매각은 이제부터 ‘솎아내기’ 작업도 병행하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는 신호탄”이라고 설명했다.
◇SK, 3대 주력 사업군으로 재편=재계에서는 SK가 정보통신기술(ICT), 에너지·화학, 반도체를 중심으로 사업군을 재정비할 수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SK그룹은 지난달 총 17조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수준의 투자계획을 내놓았는데 여기에 발맞춰 상세 투자내용을 공개한 곳도 SK이노베이션(3조원), SK텔레콤(3년간 11조원), SK하이닉스(7조원) 등 주력 3개사였다.
실제로 SK이노베이션은 최근 미국 1위 화학기업인 다우케미컬의 ‘에틸렌아크릴산(EAA)’사업 부문을 3억7,000만달러에 인수했고 그룹 지주사인 SK㈜는 LG그룹과 반도체 빅딜을 통해 웨이퍼 제조사인 LG실트론을 6,200억원에 사들였다. SK㈜는 공정거래법상 인수합병(M&A)에 나서기 어려운 SK하이닉스를 대신해 그룹 반도체 사업의 수직계열화를 돕는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 주력 사업군을 제외한 나머지 관계사들의 경우 대체로 투자 규모가 적기도 하지만 지속투자가 아닌 신규투자 항목에서는 그룹의 확실한 ‘동의’가 이뤄지지 않은 곳도 적지 않다는 게 SK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지난해 SK네트웍스가 추진했던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도 최 회장은 “반드시 따내겠다”는 의지가 강하지 않았다는 게 그룹 안팎의 전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그룹 내에 투자은행(IB)을 두면 효용성이 있지만 중소 증권사인 SK증권의 경우 이 정도 경쟁력을 갖추려면 최소 수천억원대 투자가 단행돼야 하는 상황”이라고 매각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SK 지배구조 변화에도 관심=SK증권 매각이 현실화할 경우 SK그룹 지배구조에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동안 재계와 증권가에서는 SK텔레콤이 인적분할해 SK㈜와 합병할 수 있다는 예상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SK의 지배구조는 ‘SK㈜→SK텔레콤→SK하이닉스’로 이어지는 형태로 SK하이닉스가 그룹 내 손자(孫子)회사라 투자 및 M&A 등에서 다양한 규제를 받고 있을뿐더러 모(母)회사의 배당 확대에도 불리한 측면이 있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차기 정부가 들어서면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경제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불 것으로 보인다”며 “지배구조 변신이 불가피한 SK 입장에서 금융 관련 계열사를 끌어안고 갈 경우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SK가 보유한 SK증권 지분(10%)의 현재 시장가치는 약 360억원 수준에 불과해 SK 내 다른 관계사에 매각하는 방안도 있지만 SK는 이 같은 측면들을 고려해 외부 매각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SK의 한 관계자는 “현시점에서 지배구조 변화를 위한 계열사 간 합병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SK그룹의 숨 가쁜 변화
2016년 6월 | -최태원 회장 사장단 긴급 소집해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서든데스(돌연사)’ 한다” 강조 |
2016년 12월 | -사장단 인사 통해 계열사 CEO 50대로세대교체 -수펙스추구협의회 인원 20% 감축 |
2017년 1월 | -LG와 반도체 빅딜 통해 LG실트론 인수 -올해 사상 최대 17조원 투자계획 발표 |
2017년 2월 | -美 다우케미칼 고부가 화학사업 인수 -SK증권 외부 매각 추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