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왜 그랬니?” 엄마가 다그치는 목소리에 6살짜리 아이는 잔뜩 주눅이 들어 있다. 엄마가 화가 날 만했다. 정성 들여 구워놓은 쿠키가 3개나 없어진 거다. “엄마, 그거 내가 먹은 게 아니에요!” “그럼 누가 먹었단 말이냐? 너 말고는 여기 딴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아니면 그 쿠키가 발이라도 달려서 제 발로 이 방을 걸어나가기라도 했단 말이니?” 계속되는 추궁에 아이는 결국 위대한 스토리 작가가 되고 만다. “엄마 그 쿠키, 나비가 훔쳐 먹은 거 같아요.” 결국 아이의 거짓말이 승리하는 것으로 대화의 막은 내릴까. 엄마는 아이가 거짓말한다는 사실을 빤히 알기 때문에 또 다그치기 시작하면서 전쟁이 재개된다. 심지어 아이를 유도하기 위해서 거짓말에는 거짓말로 응수하는 엄마도 있다. “너 사실대로 말하면 이번만은 봐줄게.” 이 말 믿고 이실직고했다가 더 큰 곤혹을 치른 경험을 우리는 아프게 간직하고 있다.
사실 아이의 거짓말은 엄마의 계속되는 “너 왜 그랬어?”라는 심문에 대한 자기방어에서 비롯된 것이다. 약자가 강자에 대항해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거짓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청문회에서 증인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거짓말하는 것을 많이 목격하지 않았는가. 이제 우리는 “너 왜 그랬어”라는 질문이 가지는 문제점을 심층 분석해봐야 한다. 이 질문은 구조적으로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첫째, 문자의 주어가 ‘너’라는 것부터 잘못된 것이다. 상대방에게 잘못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나는 검사고 너는 피의자 신분이라는 설정에서 상대방의 잘못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파헤치겠다고 하면 돌아오는 답변은 전부 거짓말이다. 왜? 살아남아야 하니까. 그래서 부부싸움이 일어나고 고부갈등이 끝나지 않는 것이다. 문장의 주어는 ‘우리’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우리’를 문장의 주어로 삼는다는 것은 검사와 피의자의 신분이 아니라 한 팀이라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왜’를 묻는 것은 원인분석을 하겠다는 자세다. 원인을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뿌리 깊은 생각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현재 가장 급하고 중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래서 ‘왜’보다는 ‘어떻게’를 물어야 해결책이 나온다. 해결책이 찾아지고 나서 나중에 재발방지를 위해 원인분석을 할 필요가 있다. 황급한 상황 속에서 원인분석을 시도하다가는 오히려 잘못된 진단을 내리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원인이 그 문제를 일으켰다고 해서 그 다음에도 동일한 것이 원인이 돼 문제가 발생하라는 법은 없다. 상자 밖에서 생각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원인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백지에서 출발하는 것이 더 낫다.
셋째, ‘그랬어’라는 말의 시제가 과거라는 것이 문제다. 과거를 철두철미하게 파헤친다는 것은 갈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과거에만 얽매여서 한 걸음도 앞으로 못 나가는 경우를 우리는 곳곳에서 발견한다. 한일분쟁이 그렇고 여야투쟁이 그렇다. 과거에 대한 매끈하고 완벽한 정리가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지만 언제 한 번이라도 그렇게 깨끗하게 매듭진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유럽이 영토분쟁을 어떤 식으로 종식시켰는지 참고할 필요가 있다. 과거보다는 미래를 물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망치철학자’로 불린다. 그의 손에 들린 망치는 두 가지 역할을 한다. 하나는 망치로 과거의 잘못된 생각·전통·철학들을 다 부숴버리겠다는 것이다. 과거에 얽매여서 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전복시켜버리겠다는 거다. 또 다른 하나는,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서 망치가 필요하다. 과거에 대한 파괴와 미래를 건설하는 데 모두 망치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손에 들려진 망치는 바로 질문하는 것이다.
“너 왜 그랬어?”라고 부하를 다그치면 돌아오는 답변은 전부 거짓말이다. 그래서 갈등은 더욱 커진다. 그 대신 이렇게 물어라.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 미래에 대비하는 해결책을 같이 찾자는 말이다.
연세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