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 지난해 11월 내놓은 현장 검토본에 교육부에 접수된 의견을 반영한 국정교과서 최종본을 지난달 말 발표했다. 정부는 단순오류부터 친일 반민족 행위의 구체적인 제시 등 학계가 지적한 내용까지 크게 수정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수립’ 표현, 5·18 민주화운동 왜곡, 박정희 전 대통령 미화 등의 기술 부분에 대한 논쟁은 오히려 커지며 교과서 국정화를 놓고 찬반 진영이 더욱 날을 세우고 있다. 국정교과서 찬성 측은 기존 교과서로는 학생들이 좌편향된 역사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어 교과서 국정화를 강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정권의 입맛에 맞게 재단된 부실교과서를 사용하는 것은 부당하며 획일화된 관점으로 역사를 가르치려는 교과서 국정화는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역사는 나의 뿌리, 즉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다. 그리고 나와 내가 속한 공동체의 존립근거를 설명하는 기억장치이자 미래 삶에 대한 좌표다. 여기서 기억의 전제는 운명공동체인 국가 또는 민족, 그리고 인류의 지속성을 위한 기억이다. 따라서 역사교육은 내가 소속된 공동체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공유된 기억의 계승 장치인 것이다.
그런데 종종 역사를 단순히 과거의 사실이라는 ‘지식’의 의미로 이해하고 지식 위주의 역사교육이 강조돼왔다. 그래서 시험문제도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했는지와 관련된 연대 맞추기, 관련 인물 또는 위치 문제가 출제돼 지식 위주의 역사교육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실상 역사에는 우리 선조가 경험하고 극복한 수많은 문제에 대한 실패와 성공담이 강조된 지혜들이 숨어 있다. 즉 ‘왜, 어떻게 ’에 대한 답인 ‘지혜’로서의 역사가 더 중요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역사교육은 이 같은 지혜의 보고(寶庫)로서의 역사의 의미는 부각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역사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역사기록이 ‘선택돼 공유된 기억’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기억을 선택하는 관점인 역사인식이 가장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역사를 교육한다는 것은 지식과 지혜, 그리고 인식에 대한 다양한 관점에서의 검증과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역사교육에 필요한 교과서에는 이 같은 역사인식이 어떻게 반영됐는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예를 들어 1894년 조선사회의 혼란과 외세의 침략이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전라도 고부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여러 명칭의 존재는 사건을 보는 다양한 관점의 의미를 확인하게 한다. 즉 ‘동학란’ ‘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혁명’ ‘갑오농민전쟁’ 등 적어도 4개 이상의 다양한 명칭이 공존하고 있다. 이는 같은 사건을 보는 관점이 시대에 따라 다양함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또 1961년 5월16일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도 ‘5·16군사 혁명’ ‘5·16 군사쿠데타’ 등 다양한 표현이 존재하고 있다. 이 역시 다양한 관점, 즉 역사인식에 따라서 역사적 사건을 대하는 태도와 해결방안이 달라 관련 역사 기록 또한 전혀 다르게 수집되고 정리되는 것이다.
1894년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확대된 일련의 사건에 대해 ‘동학란’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왕조정권을 위기로 몰아넣은 반란자들을 처벌하고 무력으로 이를 진압한다는 관점에서 사건을 선택하고 기록하게 된다. 반대로 이를 ‘동학농민혁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조선왕조사회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농민의 관점과 입장에서 사실이 선택되고 기록된다. 이같이 다양한 관점과 기록이 남겨졌을 때 1894년의 사건을 교육해야 하는 교육자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기록과 관점을 함께 교육하는 것이 바람직한 교육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획일화된 하나의 관점, 하나의 교과서로 가르치는 것이 올바른 길인지는 숙고해야 할 문제다. 현재 문제가 된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된 국정 역사교과서는 친일과 반민주로 지적된 한국 근현대사의 쟁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국정교과서 최종본과 함께 검정교과서를 동시에 시행하겠다는 발상은 문제의 해결이 아닌 더 큰 갈등과 혼란을 교육계에 던져 놓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꼼수다. 교육부가 해서는 안 될 비교육적 정책이다.
답은 이미 2005년 1월 한나라당 대표 신년연설에서 당시 박근혜 대표가 말한 내용에 있다. “역사에 관한 일은 국민과 역사학자의 판단이다. 어떤 경우든 역사를 정권이 재단해서는 안 된다. 정권의 입맛에 맞게 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즉 대다수 국민과 역사학자 90% 이상이 반대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철회하고 차제에 역사문제가 갈등이 아닌 국민의 화합과 미래 희망의 화두가 되도록 새로운 논의의 장을 마련해주기 바란다.
조법종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