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제학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 대한 우려가 빠질 수는 없었다. 미국이 1조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로 인해 ‘강(强)달러’로 내몰리면 미국의 무역적자는 지금보다 심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트럼프 정부는 상품수출 중심 성장모델을 가진 동아시아 국가를 희생양으로 삼을 것으로 예상됐다. 보호무역주의와 환율전쟁은 트럼프 정부 임기 내내 이어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도 나왔다.
9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에서 열린 ‘2017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한국국제금융학회와 아시아금융학회가 공동주최한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정책 변화와 한국의 대응방안’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한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 교수(전 한국경제학회장)는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은 재정정책으로 인한 강달러가 되고 이게 무역적자를 가져오니까 그 책임을 동아시아에 돌리는 전략적인 접근이다. (보호무역과 재정 확대가 모순적이라는) 경제학적으로 접근하면 정책적으로 실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특히 환율조작국 지정 문제와 관련,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200억달러 미만으로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확장적 재정정책은 지속하지 않겠지만 무역정책과 환율정책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지난 1980년대 미국이 일본에 슈퍼 301조를 적용할 때 한국이 껴들어갔다. 이번에도 (환율조작국 지정으로) 중국을 타깃으로 하면서 한국을 끼워 넣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인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환율조작국으로 오해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며 “달러 표시 원화 환율이 적정 수준이라는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 원화 실질실효환율지수를 정기적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카드가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있었다. 왕윤종 SK경영연구소 고문은 “중국의 외환보유액이 3조달러 밑으로 떨어진 것은 급격한 위안화 가치 절하를 막기 위한 것”이라며 “지난해 10월 미국 환율보고서도 중국에 호의적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황건일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미국 행정부는 올 하반기나 돼야 제대로 꾸려질 것”이라며 “(정책의 목표는) 4월 환율보고서에서 심층분석 대상국을 피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환율조작국 지정과 관련해 “외환시장 개입 여부보다는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미국으로부터 셰일가스 등 에너지 수입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