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정권이 다시 한 번 특유의 잔혹성을 나타내면서 국제사회가 추가적인 북한 압박을 위해 공조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때마침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당사국인 한국·미국·중국·러시아·일본 등 5개국 외교장관이 주요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16∼17일·본)와 뮌헨 안보회의(17∼19일·뮌헨·이하 현지시간) 참석을 위해 독일에 모이게 돼 이번 다자회의를 계기로 북한에 대한 추가적인 조치가 심각하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트럼프의 우선순위”…추가 압박 방침 천명되나=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15일 본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정남 암살사건은 북한 정권의 성향을 판단할 수 있는 일”이라며 “이번 사건이 앞으로 한반도와 동북아 역학구도에 어떤 영향을 줄지 등에 대해 각국 외교장관들이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장관은 이번 다자회의에서 한미일·한일·한미·한중·한러 등 북핵·미사일 이해당사국 외교장관과 별도의 회담 일정을 잡았다. 대북 제재 찬성파인 미일과 반대파인 중러의 입장 차이를 얼마나 좁히느냐가 북한 추가 제재 국면의 첫 판을 제대로 짤 수 있느냐의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이번 다자회의에서도 북한에 대한 강경 입장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윤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여러 번 밝힌 것처럼 대북 문제는 미국 정부의 아주 높은 우선순위가 될 것”이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미국의 태도가 오히려 중국과 러시아의 반감을 사게 될 가능성도 있다. 때문에 한미일이 별도로 추가적인 대북 압박에 대한 의지를 천명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제사회 “김정남 살해는 선 넘은 일”=국제사회는 이번 김정남 살해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직접 지시에 의한 것으로 예측하고 이를 ‘선을 넘은 행동’이라고 한목소리로 규탄하고 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북한의 중앙집권적 성격을 고려할 때 명령은 오로지 김정은에게서만 나올 수 있다. 최고 지도자의 승인 없이 그의 직계 가족을 해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김정은을 겨냥했다.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찰스 암스트롱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도 “이번 사건도 모든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하는 김정은 식의 숙청 방식”이라며 김정은의 지시에 따른 일임을 기정사실화했다.
김정남의 구체적인 사인과 자세한 살해 과정은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가 마무리돼야 밝혀지겠지만 대다수 해외 전문가들이 이번 사건을 김정은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분석하고 있어 이번 독일 다자회의에서도 이 같은 분석을 바탕으로 북한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교가의 한 전문가는 “이번 일로 ‘김정은은 어떤 짓을 할지 모른다’는 국제사회의 인식이 더욱 확고해졌다”면서 “이 같은 시각이 이번 외교장관 논의의 바탕을 이룰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정은 입지 약화될까 강화될까=그러나 김정은의 이번 행동이 불안감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자신감에서 나온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입장이 갈린다.
동북아 전문가인 고든 창 변호사는 “혈육을 중시하는 북한 사회에서 이번 일은 선을 넘은 행위이자 정권의 불안감을 나타낸 것”이라며 “가족을 죽인 일은 김정은의 입지를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라고 점쳤다. 그러나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이번 일은 철권통치에 대한 김정은의 자신감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며 김정은에 대한 저항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일로 북중관계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지만 반대로 북중관계의 걸림돌이 제거된 면도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중국이 김정남을 버렸기에 이번 일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중국이 김정남을 비호하는 것은 김정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 북중관계 악화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 중국 내에서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