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포스트 단색화' 작가의 내면 풀어내기

'암시적 기호학' 주제로

오세열 9년만에 개인전

숫자·낙서 등으로 표현한

구작·신작 50여점 선봬

오세열의 2015년작 ‘무제’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오세열의 2015년작 ‘무제’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국내 최대의 아트페어이자 미술시장 트렌드를 보여주는 지난해 가을 KIAF(한국국제아트페어·키아프)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작가는 단연 오세열(72)이었다. 2008년 샘터화랑에서의 개인전이 마지막이었던 원로화가. 잠잠한 줄 알았던 작가는 그러나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중국 상하이 등 주요 도시에서 초청받아 전시를 열고 있었고 해외 아트페어를 중심으로 관심을 끌고 있었다. ‘단색화’ 열풍의 뒤를 잇는 이른바 ‘포스트 단색화’의 주역으로 세상이 그를 불러낸 것. 키아프에서는 개막 전날 VIP오픈에서 중국의 한 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구입해 화제가 됐다.

9년 만에 열리는 오세열의 개인전이 ‘암시적 기호학’이라는 제목으로 오는 22일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 전관에서 개막한다.

전시장 입구에 걸린, 커다랗고 시커먼 화면에 삐뚤빼뚤하게 쓴 숫자들과 흡사 칠판에 분필로 낙서한 것 같은 그림에서 오세열이 암시와 특유의 기호학이 시작된다.


“어릴 적 우리가 몽당연필에 침을 살살 묻혀서 1 2 3 4 5 이렇게 쓰잖아요. 그 생각이 났어요. 또 생각해 보면 숫자는 인간의 운명 아닙니까. 숫자 때문에 죽고 사는 사람도 많죠.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시작하는 낙서이자 공부 역시 숫자고요. 물질적인 것에만 매달리는 현대사회에서 소멸해 가는 소중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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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내는 것 또한 작가의 재주이자 역량이다. 해방둥이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즐겨 그렸고 서라벌예대 회화과에 진학했다. 1960년대 작품은 정물화가 주를 이루지만 1970년대 이후 80년대에는 추상 작업에 몰두하다. 그러다 1990년대 이후 1부터 10까지 아라비아 숫자를 새기는 지금의 ‘기호학적’ 작품을 펼쳐 보이는 중이다.

40년 화업이지만 작품은 100점 좀 넘는다 했다. 조수 하나 없이 혼자 작업하는 데다 그 과정이 수월치 않아 작품 수가 극히 적은 편이다. 그림은 언뜻 검은 바탕에 흰 분필을 그린 듯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흰색 선들이 섬세하게 긁어낸 것임을 알게 된다. 작가는 광목천 위에다 기름기를 최대한 덜어낸 다양한 색의 유화물감을 7~8번씩 덧칠한다. 두툼한 질감을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이다. 그런 다음 나이프나 면도날, 이쑤시개 같은 도구로 물감층을 긁어낸다. 가끔 그 위에 크레파스 조각이나 치간칫솔도 붙인다. 캔버스를 ‘자신의 몸’이라고 생각하는 작가에게는 색칠한 자리를 긁어내는 과정이 마치 자신의 몸을 깎아내고 상처를 내는 ‘수행’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렇게 물감을 긁어내는 작업을 반복하면 결국에는 가장 밑바닥에 깔려있던 색들도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데, 이것이 마치 자신의 솔직한 내면을 드러내 마주하는 것 같다는 고백이다.

미술시장에서는 오세열을 덧칠로 마련하는 어둑한 바탕색 등을 이유로 ‘포스트 단색화’ 작가라 부르지만 정작 작가는 이를 정중히 사양했다. 굳이 특정 사조에 그를 편입시키지 않더라도 순수한 아이의 눈으로도 감상할 수 있는 그 소통의 폭 만으로도 대중적 사랑을 받기 충분하다. 구작과 신작을 아울러 50여 점을 선보였다. 3월26일까지.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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