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충남지사가 한계기업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 카드를 경제정책 기조로 들고 나왔다. 이는 사실상 야권의 금기를 깬 ‘우클릭’ 정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전 대표 등은 조선·해운 등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원칙에는 동감해왔지만 이를 전면으로 내세우지는 못했다. 양대 노총과 연대하고 있는 야당과 야권주자로서 대량해고가 불가피한 구조조정 작업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안 지사는 20일 개설된 정책 홈페이지를 통해 공정·혁신·개방을 키워드로 한 경제정책 기조를 설명했다.
안 지사는 공정한 시장경제 정책의 하나로 산업구조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조업 일부에서 경쟁력이 저하됨에 따라 한계기업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는 우리 산업구조를 개편해야 할 마지막 기회의 문이 닫히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적 절벽에 부딪힌 한계기업에 대한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어 안 지사는 “정부는 새로운 산업구조로의 전환에 소극적”이라며 “한계기업의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해 국민의 혈세를 투입했다”고 지적했다. 대우조선해양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기업회생 절차에 국고를 투입해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안 지사는 “산업구조를 개편하면 아픔이 따를 것”이라며 고통분담을 요구한 뒤 “정부의 튼튼한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 과정에서 구조조정 이슈를 당시 새누리당보다 먼저 선점한 바 있다. 단 구조조정에 나서되 근본적 실업 및 고용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전제를 내걸었다. 안 지사가 이날 밝힌 공약은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이 주장했던 구조조정 기조에 비해 한발 더 나아갔다는 평가를 받는다. 산업구조 개편 시 따르는 희생에 대해서도 감수하겠다는 결단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을 이끌었던 김종인 의원의 구상이 안 지사의 산업구조 개편 공약에 투영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아울러 안 지사는 혁신경제 정책을 주장하며 △벤처캐피털 금액 한도 기준 합리화 및 연대보증제도 폐지 △과학자 중심의 연구개발(R&D) 거버넌스 및 기초원천연구 적극 투자를 제안했다. 또 개방형 통상국가를 만들겠다며 △외채 및 외환보유액의 안정적 관리 △남북경협 △‘환황해 프로젝트’를 통한 경제적 부 창출 등을 공약으로 밝혔다.
이 같은 안 지사의 공약에 대해 문재인 전 대표 측은 “무조건적인 구조조정은 안 된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캠프에서 정책을 맡고 있는 한 인사는 이날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조선·해운 업계 구조조정이 연착륙되기 위해서는 아무런 대책 없이 진행하면 안 된다”며 “군함 발주 등을 통해 서서히 회복할 시간과 산업이 개편될 시간을 줘야 지역경제 침체와 대량해고를 막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중도 확장에 방점을 둔 안 지사의 기존 행보에 이어 이날 발표한 경제공약까지 ‘우클릭’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진보층 결집을 이끌어내고 있는 문 전 대표와의 신경전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안 지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누구라도 그 사람의 의지를 선한 의지로 받아들여야 한다. 좋은 정치를 하려고 했겠지만 결국 법과 제도를 따르지 않아 문제”라고 언급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에 대해 문 전 대표 측은 “안 지사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