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의 뇌물 스캔들이 불거지자 부인 로스마 만소르 여사의 호화 쇼핑이 입방아에 올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로스마 여사는 일정한 수입이 없는데도 몇 년 동안 신용카드로 600만달러어치의 물건을 사들였다. 로스마 여사는 영국·미국의 유명 백화점에서 고가 보석류와 명품을 구매했는데 가격이 수천만원대인 에르메스 핸드백만 수십개에 달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국영투자기업인 말레이시아개발유한공사(1MDB)에서 받은 뇌물로 쇼핑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명품 핸드백의 뇌물 수단 이용은 중국에서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그동안 중국에서는 값비싼 명품을 선물로 주는 것이 흔했고 이 때문에 고위 공직자들이 고가 제품을 갖고 있다가 당국에 적발되기도 했다.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와 저우융캉 전 정치국 상무위원 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주목을 받았던 중국 가수 탕찬의 옷장에서는 가격이 45만위안(약 7,600만원)인 에르메스 버킨백 등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대형 로비사건에 명품이 등장하는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2007년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신정아씨는 정·관계 인사에게 에르메스 지갑 등을 선물해 화제가 되기도 했고 지난해 8월 대우조선 비리에 연루돼 구속된 홍보대행사 대표 박수환씨도 로비에 에르메스 핸드백을 이용한 것으로 알려져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서는 박채윤 와이제이콥스메디칼 대표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부인에게 에르메스 핸드백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침체로 소비 여력이 줄어드는 가운데서도 국내에서 명품에 대한 열망은 여전하다. 일부 인기 제품의 경우 구매를 하려면 2~3년은 기다려야 할 정도다. 이 때문에 에르메스는 올 들어 제품 가격을 평균 5% 인상하기도 했다. 이를 보고 있노라면 극심한 양극화 속에서도 일부 계층의 과소비와 뇌물 수요가 여전한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오철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