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콜이 이어지는 내내 박수가 끊이지 않는다. 프랑켄슈타인 역을 맡은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피조물 역의 조니 리 밀러가 무대 위로 뛰어 나오자 박수소리의 밀도도 커진다. 객석에 조명이 들어오기 전까지 자리를 뜨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무대에 실제로 등장한 배우는 단 한 명도 없었는데도.
지난 21일 서울 충무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NT라이브 무대. 2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NT라이브 버전 ‘프랑켄슈타인’의 재상영 첫날의 풍경이다. 영화 ‘트레인스포팅’ ‘슬럼독 밀리어네어’ 등으로 유명한 대니 보일 감독의 연출로 2011년 영국 국립극장 무대에 올랐던 이 작품은 초연 당시 “극장의 쿠데타”(타임즈)라는 평을 들었던 무대를 그대로 촬영한 것이다. 연극 같기도 하고 영화 같기도 하고 장르 파괴 영상물로 국내에 도착한 이 작품은 또 다른 의미에서 ‘극장의 혁명’이었다.
NT라이브는 영국 국립극장이 연극계 화제작을 촬영해 전 세계 공연장과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프로그램으로 국립극장은 2014년 3월부터 국내 상영을 시작했다. 흥행작은 프랑켄슈타인뿐만이 아니다. 지난해까지 무대에 올린 총 10편(재상영 3편 포함) 중 6편은 전석 매진됐다. 특히 이달 26일까지 상영하는 작품 중 연극 ‘프랑켄슈타인’은 전석 매진됐고 연극 ‘제인에어’의 객석 점유율도 83%(22일 기준)에 달한다.
보통 연극은 희곡과 배우, 관객 그리고 공간(무대)을 통해 완성된다. 그런데 관객을 제외한 모든 요소를 스크린 안에 가둬버린 이 작품을 연극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연극보다는 영화에 가까워진 NT라이브 작품에 연극 애호가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많은 관객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해외 연극 무대를 한국어 자막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는다. 국립극장에서도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번역이다. 이날 공연에서는 영국식 유머가 가미된 대사에도 관객들이 기분 좋게 웃음소리를 냈다. 최근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 공연을 봤다는 공연마니아 김현정(34) 씨는 “여행을 갈 때마다 해외 오리지널 공연을 꼭 관람하는데 언어 장벽 때문에 연극까지 볼 엄두가 안 났다”며 “영국 국립극장에서 직접 프랑켄슈타인을 감상하는 것처럼 실감 났는데 자막도 함께 볼 수 있어 작품을 이해하기도 쉬웠다”고 평했다. 국립극장은 매끄러운 번역을 위해 많은 공을 들인다. 대부분 상영작이 원작 대본에 쓰인 단어만 2만~3만 개에 이르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번역작업만 두 달 가까이 걸리고 여러 번의 감수를 통해 한국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다듬는다.
영상미도 영화 못지않다. 단순히 관객석과 같은 각도로 무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조감 촬영(새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듯 촬영한 것·Bird‘s Eye View)을 더해 다양한 무대를 다각도로 감상할 수 있게 했고 페이드인, 페이드아웃, 더블 익스포저(두 화면이 포개어지는 기법) 등 편집을 통해 영화적 문법을 접목했다. 고화질 블루레이로 뛰어난 화질에 스크린 크기도 15×8.4m나 되니 실제 공연을 보듯 생생하게 즐길 수 있다.
명당 자리에서 명품무대를 즐기는 효과를 누리면서 동시에 가격도 편당 1만5,000원으로 저렴하다는 것은 크나큰 장점이다. NT라이브 사업을 맡고 있는 김영숙 국립극장 공연기획팀 PD는 “촬영팀과 공연제작팀이 공연 기획 단계에서부터 협업하기 때문에 모든 장면이 무대는 물론 촬영에 적합하게 연출된다”며 “어느 자리에 앉든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연극을 감상하는 느낌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립극장은 앞으로도 국내 관객들이 선호하는 작품 위주로 다양한 공연을 상영할 계획이다. 현재 영국 현지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연극 아마데우스를 포함해 다양한 작품들을 하반기 상영 후보군으로 올려놓고 있다. 김 PD는 “NT라이브가 인기를 끌면서 다른 극장들도 연극이나 뮤지컬 실황 상영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분위기”라며 “앞으로도 한국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