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가계부채 관리는 물론 중요한 과제입니다. 하지만 무차별적으로 대출규제를 하면 오히려 더 큰 가계부채의 부실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무주택 서민들이 입는 피해가 클 것입니다.”
지난 24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심광일(사진) 대한주택건설협회 회장은 현 정부의 주택정책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정부가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중도금 대출을 죄는 등 금융규제에 나서자 주택사업 현장이 큰 혼돈에 빠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시장원리에 따라 규제를 최소화하면서 주택시장의 연착륙을 도와야 한다는 게 심 회장의 생각이다.
아울러 그는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후분양제 도입에도 큰 우려를 나타냈다. 현재와 같이 사업비 조달이 쉽지 않은 금융제도 아래에서 후분양제를 시행하면 중견 건설사들은 고사 직전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불안한 환경에 중견 주택건설 업체들의 대표라는 중책을 맡은 심 회장의 목소리에는 근심과 더불어 비장한 각오까지 묻어났다.
◇금융권의 대출규제 완화 필수적
“어려운 시기에 회장직을 맡아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거운 것이 사실입니다.” 지난해 12월 국내 주택·건설 업계의 최대 단체 중 하나인 대한주택건설협회의 수장을 맡은 심 회장은 부담감을 토로하며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도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며 위기를 타개할 의지를 내비쳤다. 또 정부가 내놓아야 할 정책을 말할 때는 단호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실제 그의 말대로 최근 주택 업계는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지난해 부동산 경기 과열 논란에 정부는 일부 지역에 사실상 전매를 금지하는 등의 11·3대책과 대출규제 등 금융규제 정책 등을 잇달아 내놓았다. 하지만 이는 시장의 열기를 식히는 정도가 아니라 한파를 맞게 했다. 1순위 청약이 미달되는 사업장이 늘고 중도금 대출이 막혀 수분양자들이 갈팡질팡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는 정부에 현 정책의 수정을 반복적으로 요구했다. “1,300조원의 가계부채 규모는 정말 심각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가계부채가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그럼 이런 상황에서 중도금 대출 등 계속 규제만 가할 것인가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죠.” 즉 중도금 대출규제만으로 가계부채를 줄이기는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이를 막으면 주택 업계뿐 아니라 무주택 서민까지 큰 피해가 돌아간다는 설명이다. “저희가 조사한 내용을 보면 지난해 12월 기준 주택담보대출의 연체율은 0.19% 정도인 반면 신용대출은 약 0.4% 정도”라며 “질적으로 가장 안전한 대출인 주택대출을 막는 것은 가계부채의 핵심 문제를 벗어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지금 현장에서는 분양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면서 현 정책은 주택 업계가 사실상 분양하지 말라는 시그널과 같다고 말했다. 이어 “주택산업은 서비스업·유통업 등 국가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며 “조속히 금융규제부터 정상화해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후분양제는 중견 건설 업체 도살작전
주택 업계의 걱정은 금융 당국의 규제에만 있지 않다. 조기 대선 국면으로 접어든 최근의 정국을 바라보면서 주택 업계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후분양제·전월세상한제 등 현실과 다소 멀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정책들이 다시금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심 회장은 특히 후분양제에 대해 큰 우려를 나타냈다. 후분양제는 건설사가 입주자를 모집하고 아파트를 짓는 현행 선분양제와 반대되는 개념을 말한다. 후분양제는 소비자가 집을 보고 분양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규모가 크지 않은 건설사의 경우 건설자금을 마련하는 데 부담이 커진다. 지난 2004년 정부가 도입을 검토했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되며 흐지부지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주택금융 시스템 발전 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발주하며 ‘후분양제 도입의 장단점 및 시장 영향에 대한 분석’을 포함시켜 정부가 후분양제를 본격 검토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최근 일고 있다.
그는 “후분양제는 소비자의 주택구매 선택권을 확대하고 투기를 억제한다는 취지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그만큼 소비자와 주택 업체의 부담이 같이 커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금융지원이 받쳐주면 후분양제도 문제가 없지만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후분양제를 하겠다고 하면 대형 건설사들 외에 살아남을 수 있는 건설 업체가 얼마나 되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또 “현재의 선분양제가 주택 수요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고 비효율적인 제도는 아니다”라며 “주택자금을 장기간 분납할 수 있게 도와주고 목돈 마련 부담을 완화해준다”고 주장했다. 특히 “대선이 다가와 표 계산만 해서 주택 정책을 세우면 안 된다”며 포퓰리즘 정책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아울러 새 정부가 들어서면 주택 관련 규제를 최소화해줄 것을 당부했다. 심 회장은 “정부는 시장 원리에 따라 돌아가도록 규제를 최소화하는 대신 시장 기능에 문제가 생길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손질을 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견 건설 업체에는 소규모 정비사업이 기회…기술 개발 등 자생 방안도 필수
심 회장은 정부의 정책기조 변화를 촉구하는 한편 중견 업체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자구책을 만드는 데도 고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건설사들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는 가로주택정비사업 등 소규모 재건축사업에 심 회장 역시 기대를 거는 눈치다. 심 회장은 “소규모 정비사업은 중소 주택 업체에 적합한 사업이기에 협회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은 도로와 접한 소규모 주택가를 블록 단위로 정비하는 일종의 ‘미니 재건축’사업을 지칭한다. 사업 기간이 2∼3년으로 비교적 짧고 대규모 정비사업의 사업성이 점점 떨어진다는 지적이 적지 않아 최근 정비사업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 중견 건설 업체에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다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이어갔다. 그는 “서울에서는 시 정부와 HUG가 협약을 체결해 가로주택정비사업에 투입되는 총 사업비의 90%가 대출 가능하도록 관련 금융상품을 출시하고 공사비도 지원하는 정책이 진행 중”이라면서 “이 같은 지원 정책이 전국에서 시행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심 회장은 빠르게 변하는 주택시장 환경과 사업 여건 등을 언급하며 중견 업체의 자생 전략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중견 업체도 기업 이미지를 구축하고 브랜드를 개발해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며 “최근 환경에 맞는 기술 개발도 필수적인데 협회가 이를 지원할 뿐 아니라 주택 업체들의 생존전략을 지속적으로 강구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권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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