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라고 해서 국민 건강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업체명을 밝히기 싫겠습니까. 법적으로 문제 소지가 있어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환경부 고위관계자)
환경부가 이달 초 가습기살균제 유독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295톤을 불법유통한 33곳을 적발했다고 발표하면서 정작 기업명은 공개하지 않아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시민단체와 야당이 적발된 기업을 밝히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환경부는 공개 여부를 두고 법률 검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환경부 고위관계자는 27일 “환경부 고문변호사들이 기업명을 밝혀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를 살펴보고 있다”며 “이르면 이번주 중 나올 최종 의견에 따라 공개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개하는 게 옳다는 입장인 환경부의 입을 막고 있는 것은 피의사실 공표를 금하고 있는 형법 126조다. 환경부가 자체 진행 중인 법률 자문과는 별도로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법인에 자문한 결과에 따르면 환경부가 업체명을 공개하더라도 법률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서는 △피의사실이 국민의 알 권리로 보장받아야 할 내용 △충분한 근거 제시 △정당한 권한을 가진 자에 의해 발표 △유죄를 속단하지 않게끔 공개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환경부는 이들 4가지 원칙 가운데 마지막 사항에 제약을 받아 기업명을 선뜻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가 지난 7일 배포한 자료는 제목부터가 ‘유독물질 PHMG 불법 유통업체 무더기 적발’이었다. 내용을 살펴봐도 업체명만 적시돼 있다면 해당 기업은 의심 없이 유죄라고 판단된다.
결국 환경부 스스로 제 입에 재갈을 물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환경부 관계자는 “중앙환경사범수사단이 적발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어떻게 유죄를 속단할 수 없게끔 발표할 수 있느냐”며 “문구상으로 두루뭉술하게 표현해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며 전혀 모르게끔 발표를 한다면 안 한 것만 못한 공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민 건강을 해칠 수 있을 때는 피의사실 공표 금지보다 알 권리 보장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정부가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낳은 PHMG를 대거 유통시킨 기업 명단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며 “문제 제품이 지금도 유통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대기업을 포함한 전체 기업명을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