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타 차 박빙의 선두로 맞은 마지막 18번홀(파4). 티잉그라운드 앞쪽으로 나무들이 터널처럼 늘어서 있는 이 홀에서 장타자 더스틴 존슨(33·미국)은 2번 아이언을 뽑아들었다. 안전한 선택으로 보였지만 약간 왼쪽으로 날아간 볼은 페어웨이 벙커에 빠졌다. 볼이 벙커 왼쪽 턱 가까운 곳에 놓여 존슨은 발의 절반을 벙커 턱에 걸친 채 어드레스를 해야 했다. 중심 잡기도 쉽지 않아 보인 상황이었지만 122야드(약 110m)를 남기고 54도 웨지로 친 볼은 공중으로 날아올라 그대로 그린에 꽂혔다. 거리는 딱 맞았고 홀 왼쪽으로 약 6m 떨어진 지점이었다. 두 차례 퍼트로 가볍게 파를 기록한 그는 우승상금 166만달러(약 19억원)의 주인공이 됐다.
존슨이 환상적인 벙커 샷으로 세계랭킹 1위 데뷔전을 우승으로 장식하며 ‘DJ(더스틴 존슨의 이니셜) 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존슨은 6일(한국시간) 멕시코시티의 차풀테펙GC(파71·7,330야드)에서 열린 월드골프챔피언십(WGC) 시리즈 멕시코 챔피언십 4라운드에서 3타를 줄여 최종합계 14언더파 270타를 기록했다. 막판 추격전을 벌인 토미 플리트우드(잉글랜드)가 1타 차 2위에 올랐다.
이로써 존슨은 2주 전 제네시스 오픈에 이어 2개 대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2016-2017시즌 2전2승의 기세를 이어갔다. 세계 6대 투어가 공동 주관하는 WGC 시리즈 통산 4번째이자 미국 PGA 투어로는 통산 14번째 우승. WGC 대회에서는 무려 18승을 거둔 타이거 우즈(42·미국) 다음으로 많은 우승이고 만 33세 이전에 거둔 PGA 투어 승수로는 우즈와 필 미컬슨(47·미국)에 이어 3위가 됐다.
‘누가 대세인가’를 보여준 한판 승부였다. 제네시스 오픈 제패로 ‘넘버원’ 자리에 오른 존슨은 이날 선두 저스틴 토머스(미국)에게 1타 뒤진 2위로 출발했다. 선두권은 시즌 3승의 토머스를 비롯해 세계 2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베테랑 미컬슨 등 ‘빅 네임’들이 즐비했다. 존슨은 전반에 보기 없이 버디만 4개를 골라내 4타 차 선두로 치고 나왔다. 하지만 순탄할 것 같았던 우승 길에 존 람(스페인)과 플리트우드가 복병으로 등장했다. 람은 11~15번에서만 4타를 줄여 12번·13번홀에서 연속 보기를 범한 존슨을 잠시 추월하기도 했다. 존슨은 15번홀(파5)에서 버디를 잡아 16번·17번홀에서 1타씩을 잃은 람을 2타 차로 떼어놓은 뒤에도 후반 4타를 줄인 플리트우드에게 1타 차로 쫓겼으나 그림 같은 벙커 샷으로 마지막 고비를 넘겼다. 람은 로스 피셔(잉글랜드)와 함께 공동 3위(12언더파)에 자리했고 존슨과 동반한 매킬로이는 미컬슨과 나란히 공동 7위(10언더파)로 대회를 마쳤다.
한편 존슨은 세계 1위 등극 직후 대회에서 우승한 역대 6번째 선수가 됐다. 가장 최근에 이를 이룬 선수는 2014년의 애덤 스콧(호주)이었다. 존슨은 우승 뒤 “마지막 홀 벙커 샷은 정말 환상적이었지만 다시 치고 싶지 않은 어려운 상황이었다”면서 “요즘 모든 샷이 좋아 유일하게 개선하고 싶었던 게 벙커 플레이였다”고 무결점 강자의 장기집권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