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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히든 피겨스’ 재미와 감동, 주제까지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은 훌륭한 이야기

모든 좋은 이야기가 좋은 영화가 될 수는 없지만, 좋은 영화는 반드시 좋은 이야기에서 나온다. 그리고 정말로 좋은 이야기는 특별히 드라마틱한 요소를 억지로 끼워넣지 않아도 실화 그 자체에서 충분히 재미와 감동, 그리고 주제까지 모두 갖출 수 있다. ‘히든 피겨스’가 그렇듯이 말이다.

3월 23일 개봉을 앞둔 데오도르 멜피 감독의 영화 ‘히든 피겨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위대한 인간승리나 드라마보다 더욱 드라마틱한 실화를 그려내는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히든 피겨스’에 등장하는 실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드라마틱한 실화영화와는 정반대로 지극히 소소하고 평범하다.

영화 ‘히든 피겨스’ 자넬 모네(메리 잭슨 역), 타라지 P. 헨슨(캐서린 존슨 역), 옥타비아 스펜서(도로시 본 역) / 사진제공 = 20세기 폭스 코리아영화 ‘히든 피겨스’ 자넬 모네(메리 잭슨 역), 타라지 P. 헨슨(캐서린 존슨 역), 옥타비아 스펜서(도로시 본 역) / 사진제공 = 20세기 폭스 코리아





‘히든 피겨스’는 아직 흑백차별이 뚜렷하게 존재하던 1961년, 세 명의 흑인 여성이 아침 출근길에 차가 고장나 서 있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무슨 일이냐는 경찰의 질문에 세 여성은 나사(NASA)에 출근하던 도중 차가 고장났다고 답하고, 경찰은 여성에 흑인이 나사에서 일한다는 사실에 놀란다.

‘히든 피겨스’는 이 짧은 오프닝 속에 영화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담아낸다. 이 영화가 미 항공우주국(NASA)을 배경으로 미국과 소련의 우주경쟁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내면서, 동시에 여성과 흑인의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낼 것이라는 정보를 말이다.

‘히든 피겨스’에는 세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수학계산의 천재인 캐서린(타라지 P. 헨슨 분)과 엔지니어의 재능이 있지만 흑인에 여성이라 엔지니어가 될 수 없는 메리 잭슨(자넬 모네 분), 그리고 흑인 여성들을 통제하는 주임의 역할을 하지만 흑인 여성이기에 주임이 될 수 없는 도로시(옥타비아 스펜서 분)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히든 피겨스’는 흑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미국 최고의 천재들이 모였다는 나사 안에서 말도 안 되는 불합리한 차별을 견뎌내는 세 여성의 모습과 삶을 묵묵하게 그려낸다. 하지만 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답게 ‘히든 피겨스’는 이 세 여성의 삶이 드라마틱한 반전을 계기로 확 돌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 ‘히든 피겨스’ 타라지 P. 헨슨 / 사진제공 = 20세기 폭스 코리아영화 ‘히든 피겨스’ 타라지 P. 헨슨 / 사진제공 = 20세기 폭스 코리아



오히려 ‘히든 피겨스’는 보는 내내 가슴이 콱 막혀올 정도로 답답한 그녀들의 삶을 세밀하게 포착해낸다. 나사 전체 내에 단 하나뿐인 유색인종 전용 여자화장실을 가기 위해 왕복 40분을 써야 하는 ‘캐서린’, 흑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한참 어린 백인 여성에게 온갖 수모를 당하는 ‘도로시’,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서는 대학수업을 들어야 하지만 흑인 여성이라 백인들의 학교에 들어갈 수 없는 ‘메리 잭슨’까지. ‘히든 피겨스’는 흑백간의 갈등과 차별을 그녀들의 삶을 통해 소소하지만 가슴에 와닿는 그림으로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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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갈등을 넘어서는 것 역시 사실 생각만큼 영화적이지 않다. 천재적인 계산능력을 지닌 ‘캐서린’은 천재적인 계산능력으로 여러번 팀을 구원하지만 IBM 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다시 지하 전산실로 퇴출됐고, ‘도로시’는 IBM 컴퓨터의 등장으로 전산실이 없어질 지 모른다는 말에 해고를 걱정한다. ‘메리 잭슨’은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필요한 수업 청강을 위해 흑인도 백인학교의 수업을 듣게 해달라는 길고 긴 법정투쟁을 시작한다.

‘히든 피겨스’는 ‘숨어있는 숫자’를 의미하는 ‘Hidden Figures’라는 제목처럼 사람들의 눈에 바로 보이지는 않지만, 반드시 필요했던 그녀들의 투쟁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이 ‘개인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발자취’였던 것처럼, 나사 내에서 펼쳐진 그녀들의 자신을 찾기 위한 작은 투쟁은 ‘그녀들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흑인 인권사에서는 커다란 발자취’로 남게 된 것이다.

‘히든 피겨스’가 뛰어난 점은 이 모든 이야기들을 드라마틱하게 풀어내겠다는 욕심 없이 오직 인물들의 이야기에 집중해 그려냈다는 점이다. 재미와 감동을 갖춘 좋은 이야기를 욕심을 내지 않고 풀어내며 주제까지 획득한 ‘히든 피겨스’야 말로 좋은 이야기를 어떻게 좋은 영화로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할리우드 최고의 모범사례가 될 것이다. 3월 23일 개봉.

/서경스타 원호성기자 sestar@sedaily.com

원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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