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법무부와 재무부·상무부는 7일(현지시간) 중국의 통신장비 대기업인 ZTE(중싱통신)에 대해 대(對)북한·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11억9,200만달러(약 1조3,702억원)의 벌금을 매겼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 정부가 제재 위반과 관련해 외국 기업에 부과한 벌금 중 최대 규모다. ZTE는 미국의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금지된 휴대폰 등을 283차례에 걸쳐 북한에 공급했으며 이란 국영기업에도 미국 부품과 소프트웨어가 들어간 네트워크 장비들을 지난해 4월까지 6년여간 수출했다.
중국 2위 통신장비 업체인 ZTE는 미 정부의 조사가 시작되자 제재 위반 혐의들을 은폐하려 거짓말과 로비를 전방위로 동원했지만 결국 관련 혐의들을 인정하고 벌금 중 6억6,000만달러를 징벌적 조치로 수용했다.
ZTE의 혐의는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 때 적발된 것이지만 트럼프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강력한 처벌이 이행됐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 정부는 ZTE에 이어 중국의 유명 스마트폰 업체인 화웨이에 대해서도 유사 혐의로 조사를 벌이고 있으며 혐의가 입증될 경우 미국 기업과 화웨이의 전면적 거래 중단은 물론 대규모 벌금 등 고강도 처벌을 내릴 계획이다.
이날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성명에서 이번 조치에 대해 “전 세계에 ‘게임은 끝났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며 “경제제재와 수출통제법을 무시하는 나라들은 가장 혹독한 처벌을 겪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도 “이번 합의는 우리가 그들에게 책임을 물리는 것이고 또 미국 정부가 법을 위반하고 우리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회사를 처벌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치가 대북 문제에 방관적 태도를 보이는 중국에 대해 세컨더리보이콧 실행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세컨더리보이콧은 북한과 직간접으로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이나 금융기관까지 광범위하게 제재하는 것으로 사실상 미 정부가 ZTE에 벌금 폭탄을 내리고 화웨이 제재를 예고한 것과 비슷한 조치다. 미국 외교 소식통들은 트럼프 정부가 사드 배치와 ZTE 징벌을 통해 중국과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확실히 보냈으며 향후 대북정책과 대응의 강도는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국제결제시스템망(SWIFT·스위프트)에서 북한 은행들이 최근 제외됐다고 보도했다. 스위프트는 국가 간 자금거래를 위해 설립된 국제은행간통신협회로 북한의 스위프트 퇴출은 국제 금융시장과 북한의 연결고리를 끊어 자금줄을 차단하고 대북제재의 효과를 높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유엔에 따르면 7개의 북한 은행이 스위프트에 가입돼 있으며 이 가운데 3개 은행이 거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