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에서는 혁신 클러스터도 혁신돼야 한다. “혁신은 연결을 통해 이뤄진다.”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반복한 명제다. 그런데 현실과 가상이 인간을 중심으로 융합하는 4차 산업혁명에서 연결 형태가 가상 공간으로 확장되게 된다. 이제 지역 혁신 클러스터들도 혁신돼야 하는 이유다.
우선 한국의 모방과 효율의 추격 경제에서 창조와 혁신의 탈추격 경제로 전환돼야 한다. 한국이 자랑하는 한강의 기적은 구미공단·구로공단·창원공단 등 지역 공단이라는 산업 클러스터로 구현됐다. 물류와 인력과 각종 인프라를 통한 지역 공단의 수출 가격 경쟁력으로 세계가 놀란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그런데 이제 가격 우위에 바탕을 둔 효율 기반의 산업 클러스터들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앞으로 베트남과 인도 등에도 추격당할 것이다. 공장은 중요하나 기존의 공장만으로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산업 클러스터의 한국 공장들은 4차 산업혁명의 시대적 요구인 스마트 공장으로 진화하면서 지역 혁신 클러스터와 결합해야 한다.
혁신의 탈추격 경제에서는 혁신 클러스터와 산업 클러스터가 선순환하는 구조로 진화해야 한다. 공장의 효율성과 연구개발(R&D) 혁신성의 결합이 한국의 새로운 국가 경쟁력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테크노파크·창조경제혁신센터 등 지역별 혁신 클러스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혁신 클러스터의 주축은 대학 및 연구소와 벤처 창업 생태계다. 이들 혁신 조직들의 연결된 역량이 혁신 클러스터의 경쟁력이다. 아무리 개별적으로 우수한 인재가 있다 해도 개방 연결성이 단절된 갈라파고스적 R&D 조직은 결국 혁신 경쟁에서 도태된다.
한국의 대학과 연구소의 문제는 논문 연구 중심의 단절적 구조에 있다. R&D 성공률은 95%가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인데 이전율은 20%대에 불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바닥권이다. 연구소 기술이전 수입의 비율은 미국 대비 15% 수준에 불과하다. 자발적 산학 공동 연구는 감소하고 있다. 산업 클러스터와 혁신 클러스터의 연결 고리인 인적 교류는 너무 취약하다. 대학 내 의사결정에 산학협력 교수는 참여하지 못한다. 독일의 ‘it’s OWL’ 프로젝트는 산학연의 긴밀한 연결을 통한 중소기업의 혁신 성공 사례다. 미국의 ‘I-Corps’는 과학 기업가(Science Entrepreneur)들이 연구실을 벗어나 산업 현장에 깊숙이 진입해 성공하게 됐다. 혁신 조직의 개별 역량이 아니라 산업계와의 연결 역량이 문제인 것이다.
분절화를 극복할 대안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현실과 가상의 확장 연결이다. 지금까지 지역 클러스터는 현실의 시공간에서 제한적으로 협력해왔다. 이제 현실의 시공간을 넘어 가상의 시공간으로 연결성이 확장돼야 한다. 가상 공간에서의 협력은 지역을 넘어 글로벌 협력으로 확산될 수 있다. 이를 위해 한국의 과도한 클라우드 활용 규제부터 혁파해야 한다. 실리콘밸리의 혁신성은 클라우드·오픈소스와 공유 플랫폼이라는 혁신의 공유에서 1,000배나 가속화됐음을 상기하자. 그런데 연결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과도한 보안이다. 과거의 단절된 보안 패러다임에서 온·오프라인의 개방 협력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한국 혁신 도시의 당면 과제다.
영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런던의 테크시티는 대학·연구소·벤처기업·금융·공공기관들이 강력히 연결된 혁신 생태계다. 연구자와 투자자에게 액셀러레이터·인큐베이터·법률과 마케팅 자문 등 다양한 전문 조직들이 개방 협력하고 있다. 지난 2010년 데이비드 캐머런 정부가 오픈데이터인스티튜트 등의 데이터 공유 인프라와 해외 투자 및 시장 진입 인프라를 제공하면서 영국의 성장 허브로 등장하고 있다. 즉 기존 도시의 강점을 현실과 가상으로 확장한 초연결 혁신 클러스터를 구축한 것이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이사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