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달 중 대북정책 재검토를 마무리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대북 선제타격 등 강경책에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되면서 전술핵 재배치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전술핵무기는 전략핵무기와 달리 아군의 지근거리 전장에서 사용하는 히로시마 원자폭탄 수준의 폭발력을 가진 핵무기다. 전술핵 재배치 찬성 측은 북한의 핵 도발을 억제하며 공포의 균형을 이룰 효과적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전술핵을 재배치할 경우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려 북핵 개발 반대의 명분을 잃게 되고 주변국만 자극할 것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문제가 또 불거졌다. 그동안 남북관계가 악화하고 북한의 도발이 잦아지면 독자 핵무장론과 함께 전술핵 배치 논란이 어김없이 등장했지만 이번에는 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일각에서 제기됐다는 점에서 파장이 제법 큰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술핵 배치는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시도다. 안 그래도 미중을 포함해 주변 강대국들의 힘겨루기 마당이 되고 있는 한반도를 핵 군비 경쟁의 한가운데에 불가역적으로 내모는 일이다.
현시점에서 판단하건대 이번 사안은 미국 신행정부가 정책을 수립하기 전 모든 옵션을 검토하는 가운데 나온 이야기였음에도 배치를 주장해오던 한국의 일부 정치인들과 언론이 증폭시켰다. 뉴욕타임스 기사 역시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한 새로운 대처방법인 사이버 공격에 관한 내용이 중심이고 전술핵은 곁가지로 슬쩍 언급했을 뿐이다. 따라서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 이슈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강경기조에 편승한 논란으로 판단된다. 트럼프가 선거 기간 독자 핵무장 허용을 주장했고 행정부 출범 후에도 과거 정부와 아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한반도 비핵화를 포함한 미국의 핵확산 방지 기조를 전면적으로 바꾸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이렇게 호들갑에 가까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북한이 도발을 멈추지 않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미와 중국의 갈등국면에서 강경론이 득세하기 때문이다. 짧게는 오바마 8년간의 전략적 인내, 길게는 25년의 북핵 정책들이 실패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새로운 수단 모색 차원이다. 그럼에도 전술핵 배치는 결코 효과적 대안이 될 수 없다.
일단 전술핵은 미 핵무기체계에서 비중과 가치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상대적으로 사용이 편리하고 이동성과 신속성, 그리고 상대적으로 확전 가능성 감소라는 장점이 거론되지만 미국의 전략핵무기들도 신속성과 정확성을 확보한 현시점에서 지하벙커 타격용인 B61 정도를 제외하고는 구식 무기체계로 퇴출 과정에 있다. 현재 핵잠수함·전략핵폭격기·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된 전략핵무기도 불과 7시간 안에 북한 전역의 원하는 곳을 정밀 타격할 수 있다.
결국 성능 면에서 전술핵 배치가 주는 특별한 이점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확장 억제는 전략핵으로 충분하다는 말이다. 이에 지지자들은 추가적으로 전술핵 배치가 확장 억제 약속의 신뢰성을 높일 것이고 북한에 보다 강경한 자세를 보여줌으로써 도발을 억제하고 핵무기 개발도 포기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역시 근거가 약하며 왜곡과 희망적 사고의 위험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남한 땅에 핵무기를 가져다 놓음으로써 다소의 심리적 안정감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은 있다 해도 비용과 위험이 증폭되는 등 희생이 너무도 크다. 전술핵을 배치하면 한반도의 비핵화 정책을 포기하는 것인 동시에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또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어봐야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포기할 것이라는 발상도 아전인수의 해석오류일 뿐이다. 북한이 생존의 최후 수단으로 핵을 개발했기 때문에 전술핵 배치로 생존 위협이 커진다면 포기할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고 오히려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핵전력 강화에 몰두할 것이다.
필자는 미국이 전술핵을 실제로 배치할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고 보지만 만약에 한다면 우리에게 재앙 수준의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핵 도미노와 함께 미중, 더 나아가 북중러 대 한미일의 대결 구도가 가속화할 것이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것이 분명하다. 중국과 러시아는 곧바로 핵전력 증강에 나설 것이며 주 목표물은 한국이 된다. 반면 이들 국가에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심지어 북한의 핵 보유조차도 핵 균형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에 이를 수도 있다. 전술핵 배치로 핵우산의 신뢰를 높이려 한 최초의 목적은 사라지고 공포의 균형구도로 인한 긴장은 더욱 심화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핵우산 공약이 미덥지 못하다면 전술핵을 배치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따라서 한미동맹의 신뢰를 높이기 위한 외교에 더욱 신경 쓰는 편이 낫다.
전술핵 배치나 핵무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주 이스라엘을 모델로 제시한다. 이스라엘이 강력한 아랍국가로부터 생존을 유지하는 것은 대단하지만 우리가 살고 싶은 바람직한 미래는 아니지 않은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적대국들에 항상 당당한 자세를 보인다고 해도 늘 전쟁을 걱정해야 하고 테러의 위험에서 하루하루를 등골 서늘하게 살아가고 싶은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