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보호무역주의가 확대되는 등 대내외 리스크(위기)가 커지면서 오너 일가의 책임경영도 강화되고 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문경영인들이 기업 경영의 선두에 나서고 있으며 최순실 게이트로 기업 투명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져 이에 대한 기업들의 대응도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정몽구 회장 현대차 등기이사 선임…‘책임경영’ 강화=현대자동차는 17일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열린 제49기 주주총회에서 열고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사내이사에 재선임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그동안 7번이나 현대차 등기이사에 선임된 정 회장은 올해 현대모비스(012330)와 현대제철 등기이사에도 이름을 올렸으며 다음주 열리는 기아차 주총에서도 등기이사직을 맡을 예정이다.
정 회장은 주총에 앞선 인사말을 통해 “대내외적으로 불확실한 환경을 지혜롭게 이겨내도록 내실 강화와 책임 경영에 매진할 것”이라며 “미래지향적인 기업혁신을 이뤄냄으로써 외유내강의 저력을 키우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도 현대모비스 사내이사로 재선임되면서 오너 일가로서 경영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내비쳤다. 구본무 LG(003550)그룹 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부회장도 올해도 계열사의 등기임원을 맡아 책임경영을 이어갔다. LG전자(066570)는 이날 주주총회를 열고 구 부회장을 3년 임기의 등기임원으로 재선임했다.
효성(004800)그룹도 올해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조석래 전 회장과 이상운 부회장의 2인 대표체제로 당분간 회사가 운영되겠지만 이미 지난 1월 승진한 조현준 회장이 등기이사에 등재돼 있고 조 회장의 동생인 조현상 사장 역시 사내이사진에 포함되는 등 오너 일가가 경영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재계에서는 등기이사직을 맡고 나서는 오너 일가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대내외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기업이 느끼는 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상황에서 오너의 책임경영 강화는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LG전자 조성진 부회장 체제 강화…‘위기’에 힘 실리는 전문경영인=위기 극복을 위한 효율적 대처를 위해 올해 주주총회에서는 전문경영인이 대거 부상했다. LG전자는 이번 주총에서 이사 정원을 최대 9인에서 7인으로 변경했다. 그동안 3명의 사업본부장이 각자 대표를 맡았지만 지난해 말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중심의 체제로 전환됐고 이번에 이사회 정원을 줄이면서 조 부회장의 단독 최고경영자(CEO) 체제에 힘을 실어줬다.
네이버 역시 올해 주총에서 변대규 이사회 의장과 한성숙 대표이사가 선출되면서 전문경영인의 세대교체에 힘을 실었다.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전 이장은 이사직만 유지하면서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유망 스타트업 발굴에 전념하고 지난 8년간 네이버를 이끌었던 김상헌 대표는 고문으로 경영 자문을 담당하게 됐다. 다음의 창업자인 이재웅 전 대표는 이와 같은 네이버의 변화를 두고 “한국 경제의 새로운 모범”이라고 평가했다.
◇반기업 정서 의식…투명경영 약속 등 주주친화적 주총=최순실 게이트로 반기업·반재벌 정서가 확대되는 것을 의식한 듯 올해 주총에서는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주주 달래기에 나섰다. 현대모비스는 현대차에 이어 투명경영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했으며 LG화학(051910)은 보통주 1주당 5,000원, 우선주 1주당 5,050원 등 총 배당금이 3,680억원으로 전년보다 11.1% 증가한 사상 최고 배당액을 승인했다. 아울러 동국제강(001230) 주총장에서는 장세욱 부회장이 직접 연단에 올라 구조조정과 사업별 성과를 설명하면서 적극적인 주주와의 소통 의지를 보였다. 차석용 LG생활건강(051900) 부회장은 이날 열린 주주총회 인사말을 통해 “어려운 사업환경에서도 목표를 잃지 않고 한 방향으로 힘을 모아 최고의 성과들을 만들어냈다”며 “투명 경영과 지속 성장으로 주주들이 신뢰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 가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참석한 주주들도 어려운 시기이니만큼 경영진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이 때문에 대부분 대기업 주총은 지난해와는 달리 일사천리로 마무리됐다. 예컨대 효성의 경우 일부 주주가 현 오너 일가의 경영능력 등을 문제 삼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주주들이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일군 현 경영진에 힘을 실어주면서 큰 반대의 목소리 없이 27분여 만에 주총이 끝났다.
/박성호·지민구기자 jun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