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화장을 한다

- 장인수

ㅅㄹ


벚꽃 구경 간다고

89세의 할머니


이빨은 없고 잇몸만 남은 입술에

화장을 한다.

뚝! 떨어진 동백이 땅에서 더욱 붉고 곱게 피어 있듯

화장품을 바른다.

23살의 손녀 화장품을 빌려서

검버섯 위에

곱게 바른다.

꽃에게 이쁘게 보여야지.

그 뜻을 아는지

벚나무들은

잠시 빌린 허공의 무대를

환히 채운다.

향기로 채우고

색깔과 빛을 공연하면서

잠시나마

세상을 환히 밝힌다.


딸아, 할머니 입술 닿은 립스틱 닦아내며 툴툴거렸지? ‘누가 봐준다고 주책이야. 꽃에게 이쁘게 보이겠다구요? 저 패기 좀 보소!’ 빈정거렸지? 엄마의 스무 살 화장법도 그랬단다. 나보다 못난 이에게 으스대는 거였지. 동백섬 가서 보았단다. 떨어진 꽃이 더 선명하더구나. 밟히면서도 웃더구나. 젖을수록 붉더구나. 뽐내는 화장법이 아니라 섬기는 화장법이더구나. 벌나비에게도 이쁘게 보이고, 짐승에게도 이쁘게 보이고, 저 가는 저승길도 밝히는 그런 화장법이더구나.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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