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안 된다고 연습량을 늘리지는 않았어요.”
지난 2014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데뷔 첫 시즌에 2승을 거둔 이미림(27·NH투자증권)은 3승까지 2년 반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무던하게 버티기에는 꽤 긴 시간이지만 이미림은 “‘우승이 언제 나올까’ 하는 생각을 그렇게 많이 하지는 않았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시즌 첫 메이저대회가 열릴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에서 28일 전화 인터뷰에 응한 이미림은 “우승 뒤 바로 이곳으로 이동해 언니랑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조촐한 파티 같은 것도 하지 않았고 그냥 빨리 자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며 웃었다.
이미림은 27일 캘리포니아주 칼즈배드에서 끝난 기아 클래식에서 20언더파 268타의 대회 최소타 타이기록으로 우승했다. 2위와 6타 차의 완벽한 부활. 상금으로 27만달러(약 3억원)를 받은 그는 부상으로 기아차 뉴 카덴자(K7)도 얻었다. 2014년 10월 이후 오랜만에 느껴보는 벅찬 감정이었다. 통산 상금도 290만달러를 돌파한 이미림은 “올해 들어서는 손목이 한 번도 아픈 적이 없는데 그 덕분인지 우승까지 하게 됐다”며 기뻐했다. 2013년 부상을 입은 후 고질병이 된 손목 통증은 우승 가뭄이 길어진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이번 대회에도 손목 보호를 위해 테이핑을 하고 나왔지만 나흘간 이미림의 드라이버 샷은 평균 260야드에 육박했고 그린 적중률은 83%를 웃돌았다. 보통의 선수들과 달리 골프용품 계약을 하지 않고 원하는 채를 골라 쓰는 이미림은 “시즌을 앞두고 드라이버부터 퍼터까지 전체적으로 다 바꿨는데 그 효과도 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미림을 잘 아는 사람들은 “매사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성품이 골프와 딱 맞다”고 말한다. 이미림은 “퍼트가 잘 되지 않는다거나 할 때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는 않았다”며 “안 되는 것을 몰아서 연습하고 이런 것은 없다. 그저 잘 될 때나 안 될 때나 똑같이 꾸준히 연습할 뿐”이라고 밝혔다. 장타자지만 올 시즌 그린 적중률 8위(80.5%), 그린 적중 시 퍼트 수 2위(1.68개)가 말해주듯 정교함을 함께 갖춘 것도 이런 성격과 습관 덕일지 모른다. 잘 풀릴 때도 들뜨는 일이 좀처럼 없는 그는 경기 중 표정이 거의 변하지 않는 박인비와는 또 다른 유형의 돌부처다. 어떤 상황이든 눈웃음으로 넘긴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시절 통산 3승을 거뒀던 이미림은 지난 2년 반 동안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잘 안 되더라도 여기서 끝까지 하고 그만두자는 마음가짐이었어요.” 고향(전남 광주) 선배인 신지애를 따라 연습장에서 살다시피 하던 어린 시절부터 LPGA 무대를 꿈꿔왔던 이미림이다.
텍사스에 집을 마련한 이미림은 아홉 살 터울의 친언니와 투어 생활을 하고 있다. 언니가 보호자이자 운전기사를 겸한 매니저다. 언니 옆에서 통화를 이어간 이미림은 “언니에 대한 고마움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킥킥하고 소리 죽여 웃었다.
세계랭킹을 14위로 끌어올린 이미림의 올 시즌 목표는 메이저 타이틀이다. 당장 30일 올해 첫 메이저인 ANA 인스퍼레이션이 기다리고 있다. 이미림은 “샷과 퍼트 감이 나쁘지 않다. 이 감을 유지하는 게 목표”라며 “스스로 기대를 갖고 경기에 나설 것 같다”는 말로 조심스럽게 2주 연속 우승 가능성을 말했다.
기아 클래식 마지막 홀에서 보인 배려도 화제가 됐다. 이미림은 동반 플레이어 허미정의 퍼트에 방해가 될까 봐 챔피언 퍼트를 남기는 대신 바로 홀아웃했다. 그는 국내 팬들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요청하자 이렇게 말했다. “멀리서 보내주시는 응원이 큰 힘이 됩니다. 저뿐 아니라 한국 선수들에게 앞으로도 많이 응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