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도시바 반도체 인수전에 다시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 2012년 엘피다를 인수하려다 중도 포기한 후 5년 만에 메모리 반도체 업체의 인수합병(M&A)에 대한 재도전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이날 마감된 도시바 메모리 반도체 사업 부문 예비입찰에 글로벌 재무적투자자(FI) 등과 함께 제안서를 제출했다. 50%가 넘는 지분 인수를 위해 10조원 이상을 베팅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의 가용 자금이 4조원대로 추정되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SK가 일본 또는 중동 쪽 펀드들과 손을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객관적인 상황으로 보면 인수전이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일본 정부는 드러내놓고 미국 업체를 선호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이날 인수전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일본정책투자은행이나 일본 관민 펀드인 산업혁신기구가 결국에는 34% 이상의 경영권을 사수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SK하이닉스는 이번 인수전 참여만으로 상당한 실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도시바의 기술력을 검증해볼 수 있다는 점은 이번 인수전에 참여한 업체가 얻을 수 있는 최대 매력이다. 도시바는 세계 최초로 낸드플래시를 출시한 반도체 업계의 ‘터줏대감’으로 원천기술과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인수전 참여를 통해 도시바가 ‘알짜’인지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실사 기회를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예비 입찰에 통과하면 본 입찰에 앞서 실사단을 보내게 된다. 도시바 공장의 내외부를 직접 둘러보고 전반적 회사 현황이나 개발·제조 수준 등을 면밀히 검증할 수 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경쟁사의 공장을 견학할 수 있는 기회는 평소에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며 “SK하이닉스와 도시바의 기술력 차이가 별로 없다면 굳이 무리할 이유가 없는 만큼 도시바를 포기해도 이득”이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가 인수전에 참여한 것은 낸드플래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낸드플래시는 비교적 성장이 정체된 D램과 달리 폭발적인 성장이 가능한 시장이다.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 5위 수준인 SK하이닉스가 도시바를 품에 안으면 단숨에 낸드플래시 부문 업계 2위로 뛰어오를 수 있다. 다만 SK하이닉스와 도시바의 기술격차가 거의 없어져 도시바 인수가 SK하이닉스의 재무 부담만 가중할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한편 도시바는 해외 원전 사업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자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팔아 생존을 모색할 계획이다. 도시바는 올 2월 메모리 반도체 사업 부문의 매각 대상 지분을 19.9%로 제한해 입찰에 부쳤다가 이번에는 매각 지분을 50% 이상, 최대 100%로 확대했다. 도시바 인수전에는 SK하이닉스를 비롯해 미국의 웨스턴디지털·마이크론테크놀로지, 대만의 훙하이그룹, 중국의 칭화유니그룹 등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도시바는 29일 예비입찰을 완료하면 인수 후보를 추려 오는 6월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다는 계획이다. 이어 내년 3월 매각을 마무리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