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아침에] 59조 시한폭탄 쥔 0.4조 회사채

권구찬 논설위원

임종룡 '대우조선 정상화' 배수진

국민연금, 출자전환 결정 쉽잖아

내달 18일엔 조선산업 명운 갈려

파국 피할 현실적 해법 모색해야

권구찬 부장


일 처리만큼은 똑 부러진다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대우조선해양 해법 마련에 배수진을 쳤다. 금융위 관계자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임 위원장의 머릿속에는 구조조정이 40%쯤 차지한다고 한다. 현안을 속속들이 파악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정이고 대충 넘어가지도 않는 부지런함은 ‘똑부’라는 별명이 그에게 자연스럽다. 임 위원장은 벼랑 끝에 몰린 대우조선 문제를 새 정부 출범 이후로 미루지 않겠다고 했다. 다음 정부로 미루는 것은 책임회피라고 했다.

그는 지난 2015년 이른바 ‘서별관회의’에서 마련한 4조2,000억원 규모를 지원했음에도 또다시 혈세를 투입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책임질 일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했다. 책임을 입에 올리는 공직자는 요즘 박물관에나 볼 수 있는 일이다. 국정의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강한 지금과 같은 혼란기에 대우조선 문제를 자청해서 덤터기를 쓰겠다니 별종임에 틀림없다.

그 해법이라는 게 여간 고약한 게 아니다. 지난주 정부 합동으로 내놓은 대우조선 정상화 방안은 이해관계자 모두의 고통분담을 전제로 한다. 책임소재에 따라 분담비율도 나눴다. 출자전환 비율은 국책은행 100%, 시중은행 80%, 회사채투자자 50%다. 어느 한쪽이라도 해법에 동의하지 않으면 이른바 ‘P플랜’으로 불리는 준 법정관리로 들어가는 구조다. 강제 구조조정에 착수하면 십중팔구 원금 대부분 손실을 입는다.


대우조선 해법의 최대 관건은 회사채와 기업어음(CP)투자자의 동의 여부이고 이중 회사채 28%(3,900억원)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키를 쥐고 있다. 다른 연기금도 20%쯤 쥐고 있지만 대체로 국민연금과 동조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국민연금의 입장이 어지간히 난처한 게 아니다. 평소라면 국민경제 전체의 편익을 위해 회사채의 출자전환을 감당했을 법도 하지만 최순실 국정농단사태로 인한 트라우마가 너무 깊다. 출자전환 안건은 기금운용본부 내부 투자위원회가 결정하게 된다. 본부장과 실장·팀장이 참여하는 협의체다. 멤버 일부는 최순실 사태로 검찰과 특검 수사를 받기도 했다. 전직 기금운용본부장은 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에 책임회피와 보신주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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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부결 또는 기권한다면 대우조선 몰락의 책임을 온통 뒤집어쓸 처지다. 따지고 보면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50% 출자 전환이나 90% 이상 출자전환은 그다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580조원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의 대우조선 회사채 비중은 0.0006%에 불과해 최악의 손실이 나더라도 수익률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제한적이다.

대우조선은 다음달 17~18일 운명의 사채권자 집회를 앞두고 직원 200여명을 투입해 회사채 투자자에 대한 읍소작전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들 손에 59조원 손실이든 17조원 피해든 대우조선의 운명을 맡기는 것은 너무 위태로워 보인다. 어떤 형태로든 국민연금의 퇴로를 열어줄 명분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회생 가능성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줘야 하고 첫걸음은 소통의 단추를 끼는 일이다.

만남 자체부터 옥신각신하던 산업은행과 국민연금이 30일 회동한다니 그나마 일말의 기대를 갖게 한다. 좀 더 욕심을 내 플랜을 짠 금융당국과 키를 쥔 국민연금이 직접 만나면 어떨까. 혈세를 투입하는 정부, 쌈짓돈을 떼가는 국민연금 모두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대리인이긴 마찬가지다. 대우직원이 개인 투자자를 만나면 설득하면 괜찮고 당국이 국민연금과 회동하면 외압으로 보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것을 직권남용과 팔 비틀기로 본다면 정말 한가한 소리다. /chans@sedaily.com

권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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