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시시포스'와 결별해야 할 노동입법

조준모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근로시간 단축' 내건 노동법 개정

비용 증가·유연근무제 고려 않고

강한 규제로 노사 자치 역량 훼손

시대 역행 말고 유연성 보장해야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여러 노동 관련법들 가운데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골조에 해당하는 양대 법이다. 근로기준법은 근로관계 양 당사자가 준수해야 하는 근로조건의 기준선을 설정한 법으로 이를 일탈할 경우 처벌을 받는다. 국가가 노동시장에 개입하고 처벌하는 획일적인 근로기준법은 최소화하고 당사자 간 자율 결정으로 업종별 혹은 기업규모별 특성을 반영한 근로조건 설계가 가능한 영역을 점점 확대하는 것이 글로벌 트렌드다.

현행 근로기준법도 절대 기준만 규정하고 있지 않다. 획일적 규제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을 당사자 합의로 일정 정도는 해소할 수 있도록 일부 법적 공간을 마련해뒀다. 최근 들어 근로시간 규제가 휴게시간, 연장근로 등 일일규제, 주 52시간 상한과 같이 주당 규제의 중층 규제를 갖고 있다. 이에 첩첩산중의 규제를 가급적 최소한으로 줄이고 자율적으로 재설계할 수 있는 사적 자치의 공간을 법적으로 확보해주는 것이 4차 산업혁명시대에 부합하는 보호체계라는 학계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일본도 노동기준법과 노조법에 다양한 유연 장치들을 두고 있다. 먼저 노동계약법을 별도로 만들어 노동기준법이 갖는 경직성을 조정할 수 있는 취업규칙 변경과 근로계약 기간 관련 규제를 둬 노동계약의 유연성을 확보하고 있다. 물론 근로시간과 관련해서도 노동기준법(36조)을 개정해 노사가 합의하면 법정 근로시간 이상의 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근로시간의 절대 기준을 주당 52시간으로 하되 종업원 300인 이상은 2년, 300인 미만은 4년의 시행 유예기간을 두는 법 개정을 논의하고 있다. 근로자의 건강, 그리고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근로시간을 단축하자는 취지에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법안은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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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정치권의 입법이 노사관계의 사적 자치 역량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정치권 법안은 지난 2015년 9월15일 노사정 간 이뤄진 근로시간 단축 합의에 비해 훨씬 강한 규제를 설계한 것이고 노사의 준비기간도 단축됐다. 노사가 어렵사리 합의했던 사항을 원점으로 되돌리거나 도리어 후퇴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둘째, 비용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보조적 제도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임금체계 개선, 연장근로 할증률 조정 등을 통한 비용 중립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근로시간 단축이 중소기업의 경영부담을 가중시키고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감소로 이어지는 현상을 막을 대책은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 중소기업들도 인력난과 준비 기간 등을 감안해 4단계로 세분화해 오는 2024년까지 시행시기를 연장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는 9·15 노사정 합의 내용과도 유사한 안이다. 이를 애써 후퇴시키는 정치권의 논리는 빈약하다.

셋째, 입법의 방향이 미래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노동법은 생산직 공장 근로자를 중심으로 근로감독과 벌칙을 통한 획일적인 근로조건 규제로서 업무 내용과 방식에 따른 다양한 특성 맞춤형, 재택근로·스마트근로 등 탄력적 조정방안을 좀처럼 수용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다. 근로시간·휴게·휴일·휴가 등이 풀타임 (전일제)근로자를 규제 대상으로 전제하고 있어 유연한 설정 가능성을 제한하는 경향이 강하다. 세계적 흐름이 고용형태 다양화의 건강성을 확보하기 위해 개인 혹은 사업장의 특성에 맞도록 근로조건의 자발적 조율을 유도해야 것인데 도리어 획일적 규제의 강도를 높여 4차 산업혁명시대에 역행하는 측면이 강하다.

제아무리 현자(賢者)의 지혜를 가진 정치인이라 할지라도 이 주제에 대한 내공은 평생 학습한 전문가나 자신의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당사자들만 못하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애써 정상에 올려놓은 바위를 정치인들이 산 아래로 떨어뜨리고 또 다른 정권에서 사회적 대화를 통해 정상에 올려놓고자 낑낑대야만 하는 ‘시시포스 신화’와 같은 노동입법은 더 이상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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