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대법원이 야권이 장악한 의회를 무력화하며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독재체제를 사실상 법제화했다. 야권은 ‘군사 쿠데타’를 언급하는 등 강하게 반발해 베네수엘라의 혼란은 한층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뉴욕타임스(NYT)는 베네수엘라 대법원이 30일(현지시간) 의회의 입법권을 대법원 산하 헌법위원회 혹은 별도 지정 기관이 대행하는 내용의 판결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대법원은 “의회가 법원을 경멸하는 한 의회활동은 계속 무효가 될 것”이라고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NYT는 “의회는 사실상 마두로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기구였다”며 “이번 판결은 선출권력인 의회를 실질적으로 해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신들은 이번 판결의 배후가 마두로 대통령이었을 것이라는 관측을 제기한다. 지난 2015년 12월 총선에서 야당연합(MUD)이 압승을 거두자 마두로 대통령은 측근으로 대법관을 교체했으며 이후 대법원은 의회가 의결한 경제활성화법·정치범석방법 등을 위헌으로 판결하며 사실상 마두로 대통령의 수족 역할을 해왔다. 지난해 MUD가 추진한 마두로 대통령 탄핵 국민투표 절차가 중단된 데도 청원서명에 오류가 있었다는 대법원 판결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법원의 이번 결정에 대해 훌리오 보르헤스 국회의장은 “쓰레기 같은 판결”이라며 “대법원이 헌법·권리·자유를 납치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베네수엘라군이 더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며 “국민과 함께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군인들이 봉기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야권은 다음달 1일부터 가두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이번 판결로 베네수엘라가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미국 국무부는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후퇴한 사건으로 판단한다”고 논평했으며 페루 정부는 대법원 판결에 항의하는 뜻으로 주베네수엘라 대사에게 귀국조치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