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스타 문화

[현장] ‘왕위 주장자들’, 권력에의 확신과 의심...환난은 반복된다(종합)

‘사회의 기둥들’이 세월호를 떠올리게 했다면 ‘왕위 주장자들’은 현 대선 정국을 연상시킨다. 김광보 연출이 의도한 바이든, 우연의 일치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13세기 노르웨이와 2017년 대한민국이 상통한다는 것. ‘왕위 주장자들’은 무소불위 권력에 대한 욕망과 인간이 가지는 의심과 확신이 어떤 위험성을 내포하는지 적나라하게 비춘다.

‘왕위 주장자들’은 ‘인형의 집’으로 유명한 노르웨이 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의 5막 대작이다. 13세기 노르웨이를 배경으로, 스베레왕이 서거한 후 벌어진 왕위 다툼에 대해 다뤘다. 자신이 신의 선택을 받은 왕이라 믿는 호콘과 6년간 섭정을 해오며 왕국이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는 스쿨레의 다툼이 주된 갈등이다. 여기에 니콜라스 주교가 둘 사이를 오가며 갈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사진=세종문화회관/사진=세종문화회관


연극 ‘왕위 주장자들’ 프레스콜이 31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렸다. 공연 전막이 끝난 후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는 김광보 연출과 배우 유성주, 유연수, 김주헌이 참석해 작품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시극단은 2017년, 창단 20주년을 기념해 ‘왕위 주장자들’을 시즌 첫 작품으로 선정했다. 2014년 입센의 ‘사회의 기둥들’ 한국 초연을 선보인 김광보 연출이 날카로운 통찰력을 바탕으로 감각적인 연출을 선보였다. 국내 유일의 헨리크 입센 전문가 김미혜 한양대 명예교수가 번역에 참여했으며 고연옥 작가가 각색을 맡았다.

서울시극단 단장이자 ‘왕위 주장자들’의 연출을 맡은 김광보 연출가는 “처음에 대본을 받았을 때, 한 대 맞은 느낌을 받았다. 150년 전의 입센 할아버지가 한국에 일어날 일을 어떻게 예언했는지 놀랐다”며 “환난의 시기를 지나 희망이 탄생하려는 직전, 그 희망이 우리 모두가 바라는 바람직한 희망인지 의구심을 제시하는 작품이다”라고 연극에 대해 소개했다.

/사진=세종문화회관/사진=세종문화회관


왕권에 대한 끝없는 욕망을 가진 스쿨레 백작에는 서울시극단 지도단원인 유성주가 캐스팅됐다. 신의 소명을 확신하며 권력을 차지하고자 하는 호콘 왕은 김주헌이, 두 사람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의 니콜라스 주교는 유연수가 맡았다. 이외 이창직, 강신구, 최나라, 이지연 등 서울시극단 정단원들과 연수단원, 김 현, 문호진 등 실력파 배우 23명이 출연한다.

호콘은 선왕의 적자이며 정통한 왕임을 주장하는 인물. 이를 맡은 김주헌은 “호콘은 자신에 대한 확신이 가장 강하다며”며 “원래 대본에서는 호콘이 정의롭고 확신에 가득 찬 인물이었다. 연출님과 이야기하며 여기에 비열함도 넣는 등 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배역에 대해 설명했다.


스베레왕 서거 후 6년간 섭정하며 노르웨이가 자신의 왕국이라 믿는 스쿨레 백작 역의 유성주는 “스쿨레 백작은 호콘과는 정반대다. 자신에 대한 확신보다는 의심이 크고, 그 의심을 좇는 인물이다”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사진=세종문화회관/사진=세종문화회관


유성주는 이어 배역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스쿨레 백작은 최소 20여 년 전부터 권력욕을 가지고 왕이 되고 싶어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 중첩되면서 스쿨레의 내면에 쌓인 것을 연기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굉장히 고민했다”고 밝혔다.

입센의 ‘왕위 주장자들’은 왕권 다툼만을 다룬 단순한 시대극이 아니다. 이를 바탕으로 인물들 간의 의심과 믿음, 자기 확신에 대해 탐구한다. 역사적 맥락에만 집중하기 보다는 인간 심리에 대한 정교한 묘사,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주며 현대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의미를 그대로 옮겨온 연극 ‘왕위 주장자들’ 또한 인물의 내면 심리에 초점을 맞췄다.

김광보 연출은 “빈 공간에서 연극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저의 특징이다. 오로지 배우만 돋보이기를 바랐다. 천장에 나무가 매달려 있는데 어떻게 보면 왕관 같기도 하다. ‘왕위 주장자들’이 뿌리, 근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석했다”고 설명했다.

/사진=세종문화회관/사진=세종문화회관


더불어 “시대적 배경은, 어떤 시대를 특정 짓기보다는 지금 이 시대를 보여주려고 했다. 어떤 의상을 입고 어떤 장면을 보여주든, 제가 말하고 싶은 의미는 지금 현재에도 있다”며 “극의 마지막 장면은 첫 장면과 맞닿아있다. 환난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제가 너무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는지 모르겠지만, 반복되는 역사의 일환을 보여주려 했다”고 현 시대와의 연관성을 언급했다.

극의 전개를 이끄는 것은 왕, 백작, 주교, 이른바 권력자들이다. 이들의 권력다툼은 시대에 상관없이 타인의 삶을 뒤흔들고 결정한다. 김광보 연출은 이 점에 착안했다. 갈등 속 생기는 끝없는 불신, 무조건적인 확신에 모두 경각심을 가지게 만든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혼란스러운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한편 서울시극단은 1997년 창단 이후, 한국 연극계의 중추적 극단으로 인정받고 있다. 봄에는 고전극, 가을에는 창작극, 겨울에는 가족극을 연간 레퍼토리로 한다. 서울시극단 창단 20주년 및 세종 M씨어터 재개관 10주년 기념작인 ‘왕위 주장자들’은 3월 31일부터 4월 2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한다.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양지연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