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원은 2012년 뮤지컬 ‘레미제라블’ 한국어 초연에서 자베르 역으로 열연해 ‘더 뮤지컬 어워즈’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존재감을 각인시켰지만, 2003년부터 4년간 앙상블로 활동하며 차근 차근 배우의 길을 밟아왔다.
“작품 속 인물이 아닌 인간으로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배우 문종원은 현재 대니엘 키스의 ‘앨저넌에게 꽃을’을 무대로 옮긴 뮤지컬 ‘미스터마우스’에서 야망에 가득 찬 강박사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작품은 서른 두 살이지만 일곱 살 지능을 가진 ‘인후’(홍광호· 김성철)가 뇌 활동 증진 프로젝트에 참여해 높은 지능을 가지면서 생기는 일들을 통해 ‘진정한 행복’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뮤지컬 ‘아이다’ ‘조로’ ‘백야’ ‘레미제라블’ 등 주로 강한 인물로 관객들과 만나온 그는 “이번 ‘강박사’가 정형화된 악역으로 보이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다”고 했다. 물론 생각보다 많지 않은 출연 분량으로 인해 배우가 욕심 내지 않고 캐릭터를 그리다 보면 임팩트가 약해질 우려도 없지 않다. 이점 역시 문종원은 인지하고 있었다.
“워낙 악역도 많이 하고, 반대의 축을 가진 역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더 조심스럽더라. 이런 역할에 가장 중요한 게 ‘축’이다. 어쩌면 불편한 상황을 만들어줘야 드라마가 흘러가는 게 맞다. 긴장감과 스피드가 있어야 관객들도 몰입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강한 노선을 택하고 저만의 목적만을 이루겠다고만 생각하면 극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어요.”
“힘을 뺀다는 이유로 혹은 편하게 간다는 이유로 잠시 쉬게 되면 또 다른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어떤 흐름도 보여주지 못한 채 공연이 종반부에 도달하게 되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에겐 자신이 만든 인물이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생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실 주구장창 달려가면 편해요. 그 경계를 지키고 가는 게 어렵죠. 배우는 그런 미묘한 순간을 살아내고 싶어해요. 그래서 상당히 집중을 많이 해요.”
그렇기 때문에 문종원은 작품 속에 박제 된 ‘인물’ 이 아닌, 생명력을 지닌 ‘인간’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가고자 했다. 그의 머릿 속은 온통 ‘미스터마우스’ 생각 뿐이었다. 그것도 “어떻게 하면 좀 더 사람처럼 표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컸다. “강박사란 하나의 틀로 느껴지기보다는 사람으로 움직였으면 해요. 그 욕심을 내보는 중입니다.”
“가능한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고자 해요. 공연 캐릭터가 되면 2D가 되버린다는 점을 잘 알아요. 강박사란 인물을 몇 가지의 코드를 짚고 거기에 대한 추측을 가지고 표현하기엔 한계가 있죠. 사실 사람의 모습이 가장 입체적이에요. 우리가 어떤 사람을 봤을 때 그 사람을 입체적으로 느끼게 되면 인상이 달라지잖아요. 강박사가 아닌, 그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제가 계산으로 다 할 수 없는 그 소소한 호흡을 가져가려고 노력 중입니다.”
‘미스터마우스’란 작품에 대해 전혀 몰랐던 문종원은 이번 작품을 선택한 계기에 대해, 뮤지컬 ‘노트르담드파리’를 함께하며 인간적인 정을 쌓은 홍광호와 서범석과 또 한번 작품을 함께 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고 했다.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다시 한번 작품을 할 수 있다니 너무 좋았죠. 게다가 창작 뮤지컬이다고 하니, 한번 하고 싶었거든요. 딱 기회가 맞은거죠.”
물량 공세 뮤지컬에 익숙해져 있는 관객들에게 이번 공연이 소박한 작품으로 느껴질 우려도 있다. 또한 ‘진정한 행복’과 ‘인간에 대한 예의’란 주제가 크게 차별성을 가지는 것도 아니다.
문 배우는 “어마 어마한 무대를 통해 쏟아지는 에너지나 강렬한 힘으로 감동을 주는 작품이랑은 달라요. 음.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따뜻한 감성을 주는 공연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야기는 곧 뮤지컬 배우 강필석과의 에피소드로 이어졌다.
“강필석 형이랑 이틀 전에 만나서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했어요. 세상이 미쳐서 돌아가는 것 같다고. 현실에서든 무대에서든 너무 강하고 자극적인 걸 원해요. 무대에서 무슨 일이 터져야 하고, 어마 어마한 비극이 나와야 하고, 또 그 어마 어마한 드라마 안에 감동이 있어야 해요. 필석형이 우리 공연을 보고선 ‘강요하지 않아서 너무 좋았다.’고 했어요. 제 생각도 거기에 동의해요.”
문종원 배우가 꼽은 관람 포인트는 “공연 속에서 뭔가를 얻으려고 하지 말고, 따뜻한 마음을 안고 가세요.”였다.
“저희 작품이 사실 뻔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진 않아요. 바보를 천재로 만든다는 게 어마 어마 한 일이잖아요. 감동 포인트라는 게 ‘이 순간에 울어’라고 정해 놓은 것이 아닌, ‘툭’ ‘툭’ 걸릴 때 더 감동적이지 않나요. 인후란 아이의 순수한 눈으로 ‘엄마’ 라고 말할 때, 너무 사랑스러워서 울컥하기도 해요. 아버지를 만나는 장면도 그렇구요.”
‘미스터마우스’는 젊은 세대보다 어르신들이 보면 감동하는 공연이다. “남녀노소 다 볼 수 있는 작품이긴 한데, 좀 더 어르신 세대가 저희 공연을 보고 엄청 우시더라구요. 젊은 층은 강한 자극에 워낙 다져져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공감대라는 게 무대에서 주기도 하지만, 본인이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자기 일처럼 느낄 때 공감대가 더 형성되는 게 사실이죠. (아버님도 관람하셨나?) 4월 초반에 곧 보러 오실 예정이세요. 공연 초반엔 제가 제 작품을 잘 보지 말라고 말하거든요.”
중도 후퇴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문종원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갖는다고 한다. 스스로를 채찍질 하는 시간이 많다는 그는 “다른 이들이 배우인 저를 평가하는 것도 있겠지만, 내가 나를 평가하고 스스로를 채찍질 하지 않으면 발전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공연이 완성 됐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매일 매일의 무대가 저와의 싸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 공연을 한다고 해도, 모든 공연이 익숙해지진 않아요. 가능하면 새롭게 하려고 노력해요. 제가 안주하는 순간 저한테 의미 없는 일이 될 수 있는 데 그런 자세를 경계해요. 연출이 봐도 모르는 조금씩 다른 노선들을 가지고 가요. 그래야 한회 한회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최근 영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에서 유쾌한 갤러리 관계자 제임스 곽 역을 맡아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 문종원은 단편영화 ‘대리 드라이버’ 촬영도 마쳤다고 한다.
영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를 만든 영화사 대표인 백승환 감독의 입봉작인 ‘대리 드라이버’는 문종원 배우를 롤 모델로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시나리오를 읽고 바로 출연 결심을 한 그는 영화 속에 자신의 말투나 농담이 그대로 녹여져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인터뷰 중 새로운 소식도 들렸다. 바로 ‘팬텀싱어’ 시즌2 출연 제안을 받았지만, 고사했다는 것. ‘레미제라블’ 등 다양한 뮤지컬에서 김문정 음악감독과 인연을 이어온 문종원은 “문정 누나에게 연락이 왔는데, 바로 ‘못해요’라고 말했다.”며 웃었다.
사실 그는 “축가가 제일 어렵다”고 말할 정도로, 연기 없이 노래만 하는 것은 너무 어색하다고 했다.
“공연을 너무 많이 해 와서 그럴까요. 우리 공연의 한 장면을 보여 달라면 하면 하겠는데, 노래만 따로 떼어서 하라고 하면 아직은 어색해요. 생각만 해도 어색해요. 제가 아직 싱어는 아닌 것 같아요. 문정 감독님이 ‘너 다운 대답이다’고 답하시던걸요. 제가 거짓말을 못해요. ‘팬텀싱어’ 출연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 아니냐구요? 나중에 축가부터 열심히 연습해서 해보는 게 먼저 일 것 같은걸요. 대신 실력 있는 뮤지컬 후배들을 적극 추천했습니다.(웃음)”
배우가 TV에 출연해 대중들에게 알려지면 좋을텐데, 그는 여기에 의문을 제기했다. “갑자기 알려지는 것 보단, 한발 한발 걸어나가는 게 더 좋지 않나요?”
“유명세나 인지도가 있으면 어떤 면에선 좋을 순 있겠죠. 하지만 전 제 이름이 더 알려지는 걸 원하지 않아요. 언젠가 알려지는 날이 있겠죠. 일부러 알리지 않겠다는 건 아니지만, 저에게 주어진 것을 하나 하나 해나가는 게 ‘순수’한 것 같아요. 저는 아직도 큰 욕심은 없어요.
그의 올곧은 자세는 가끔 오해를 사기도 했다. 뮤지컬 작품에 집중하고 있을 땐 다른 작품을 잘 잡지 않는 그를 두고 누군가는 ‘제안한 작품이 주인공이 아니어서 그런거냐?’라고 물어보기도 했을 정도. 하지만 그의 대답은 이랬다.
“그 작품을 안 한 이유는 현재 제가 ‘미스터마우스’란 작품을 하고 있고, 순서에 따라 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영화가 작아서 그런 게 아니라 한발 한발 나가고 싶거든요. 제안 온 작품 중에 소규모 작품도 있었지만 꽤 큰 영화도 걸려 있었어요. 다 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나는 충분이 이 뮤지컬 작품을 해나가고 있고, 하루 하루 이 작품을 해 나가는 게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잘 알고 있거든요.”
흔들리면서도 절대 중심축을 잃지 않는 배우 문종원과의 솔직한 인터뷰는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그는 “배우라는 직업이 좀 더 제 것에 가까워요.”라고 말했지만, 그는 스스로를 내실있게 다지고 있었다.
“안 좋은 습관일 수 있는데, 제 만족의 기준이 강한 것 같아요. 타협하면서 살고 싶진 않아요. 그래서 계속 저와의 싸움의 연속입니다. 미술 하는 사람, 음악 하는 사람들이 골방에서 혼자 갇혀서 하는 게 많듯이요. 유명해지면 점점 누군가의 생각에도 공감을 해줘야 할텐데.그렇게 되면 대중들이 원하는 것에 대해 아예 생각을 하지 않을 순 없을 듯 해요. 지금 이렇게 천천히 걸어가는 게 좋아요. 아직은 많이 부족해서 혼자 흔들리고 있는 시기입니다. 중요한 건, 스스로에게 ‘거짓말 하지 않고 하는 것’ 아닐까요. ”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