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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연극 ‘파운틴헤드’] 현실성 극대화한 무대, 관객과 경계를 허물다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 연극 ‘파운틴헤드’의 무대. 본격적인 연극이 시작되기 전 스태프들이 무대 위에서 커피를 마시고 대화를 나눈다.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 연극 ‘파운틴헤드’의 무대. 본격적인 연극이 시작되기 전 스태프들이 무대 위에서 커피를 마시고 대화를 나눈다.


극장 안에 들어선 시각 오후6시47분. 무대 위에는 배우인지 스태프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여럿 서 있다. 한 명은 머그잔을 들고 커피를 홀짝이며 관객석을 구경한다. 몇몇은 무대 중앙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떨고 가끔은 극장 안 시설을 가리키며 감탄한다. 또 일부는 무대 뒤편에 훤히 드러난 음향시설을 점검한다. 이 모든 것이 연극의 일부일까. 혹시 시계가 잘못돼 이미 연극이 시작된 후 입장한 건 아닐까. 오후7시가 되자 불이 꺼졌다. 배우들이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연극은 지금 시작한 게 틀림없다.

연극이라는 장르의 생명력은 복제된 매체가 대체할 수 없는 실제성에서 나온다. 영상기술의 발달로 TV, 컴퓨터, 스마트폰으로도 언제든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굳이 공연장에서 즐기는 이유는 내 눈앞에서 단 한 번만 펼쳐지는 불연속적인 세계에 들어가는 짜릿함 때문일 것이다. 대다수 영상물 속 드라마가 완전한 사기를 지향한다면 연극은 불완전한 사기를 꿈꾼다. 배우는 이야기 속 인물에 충실하다가도 때때로 자신이 배우임을 드러낸다. 관객도 마찬가지다. 연극이 그린 세계 안으로 들어간 듯 몰입하지만 자신은 극장 의자에 앉은 구경꾼일 뿐이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직시한다. 배우와 관객은 속고 속이는 그 중간 어디쯤의 세계에서 만나고 교감한다. 끊임없는 밀고 당기기다.

이렇게 연극의 장점과 고유의 가치를 열거하는 이유는 유럽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극 연출가인 이보 반 호브 네덜란드 토닐그룹 예술감독의 손에서 탄생한 ‘파운틴헤드’라는 작품이 이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2일 LG아트센터에서 막을 내린 연극 ‘파운틴헤드’는 구 소련 출신으로 미국으로 망명한 작가 아인 랜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2014년 첫선을 보인 작품이다. 관습에 순응하는 대신 자신만의 신념과 예술적 가치관에 따르는 삶을 택한 천재 건축가 하워드 로크와 오로지 사회적 평판과 성공에만 매달리는 또 다른 건축가 피터 키팅, 그리고 로크를 사랑하지만 자기 파멸로 세상에 저항하고자 키팅과 결혼하는 건축칼럼니스트 도미니크 프랭컨 등이 주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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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는 이상주의와 순응주의(혹은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 작게는 사랑과 야망이 충돌하는 세계를 반 호브 감독은 무대 위 공간의 분절을 통해 절묘하게 창조했다. 고객의 입맛에 맞춘 복제품만 만들어 내는 키팅과 그의 보스 프랭컨의 사무실, 로크의 작업실, 키팅의 집, 로크와 또 다른 이상주의 건축가 헨리 캐머런의 사무실 등 각각의 공간은 분절됐지만 유기적이다. 반 호브 감독은 카메라와 스크린으로 영화의 이점을 연극에 접목한다. 무대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는 때로는 배경음악(BGM)을 만들어내는 실로폰이나 재생기를 비추기도 하고 로크와 키팅의 건축 도면, 도미니크의 타자기, 심지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로크와 도미니크의 정사 장면을 버드뷰로 비춘다. 모두가 합작한 이 사기극 속에 관객은 그대로 무장해제된다. 눈앞의 무대가 허구고 관객석이 현실이라는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의 작품을 국내에서 보기는 쉽지 않다. 이번 무대도 LG아트센터에서 반 호브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오프닝 나이트’를 선보인지 4년만에 내한한 작품이다. 다만 유럽과 미국에서는 그의 작품을 그나마 쉽게 접할 수 있다. 당장 이달 17일 런던 바비칸센터에서 주드 로 주연의 ‘옵세션’이 초연한다. 올 연말에는 네덜란드에서 파운틴헤드가 재연된다.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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