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이 러시아 민족 대서사시로 꼽히는 모데스트 무소륵스키의 대작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를 20~23일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린다. 국내 오페라단 최초의 도전이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16세기 말 러시아를 배경으로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보리스 고두노프의 비극적인 일대기를 그린 작품으로 러시아 5인조로 꼽히는 무소륵스키가 유일하게 완성한 오페라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황제가 되려는 야심을 품고 황태자를 살해했다가 망령에 시달리며 죽는 역사 속 인물로 이번 작품에서는 고두노프의 삶뿐만 아니라 러시아 민중의 고달프지만 힘찬 역사를 다뤘다. 김학민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은 “‘보리스 고두노프’는 러시아 민족 특유의 장대하면서 음울한 단조풍의 선율, 웅장하면서도 숙연한 오케스트레이션과 합창이 어우러진 러시아 오페라의 정수”라고 소개하며 “국내에 잘 알려진 차이콥스키가 다소 서양에 동화된 작곡가라면 무소륵스키는 음악은 물론 드라마와 정서까지 러시아 그 자체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뚜렷한 러시아 색채다. 연출을 맡은 스테파노 포다는 “미스터리, 환상, 유령, 투기, 야심, 혈연 문제 등이 교차하면서 셰익스피어의 걸작 리어왕이나 맥베드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이들보다 훨씬 복잡하고 특별하다”며 “러시아 키릴 문자와 폴란드 라틴어의 세계가 대비된 방대한 프레스코화 속에서 관객들이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무대에선 동구권의 대표 베이스로 꼽히며 뉴욕, 파리, 베를린 등에서 맹활약중인 오를린 아나스타소프와 러시아 볼쇼이 극장의 솔리스트인 미하일 카자코프가 보리스 고두노프 역을 맡으며 여주인공 마리나 역으로 메조 소프라노 알리사 콜로소바와 양송미가 더블 캐스팅됐다. 양송미는 한국 메조 소프라노로는 최초로 세계 3대 오페라 하우스 중 하나인 빈 국립극장에서 데뷔하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또 소심한 수도승에서 가짜 황태자 드미트리가 되어 황권을 꿈꾸는 그리고리 역에 최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라보엠’과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역으로 데뷔한 신상근이 활약한다.